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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수 Heavenlee(이혜원)는 ‘존재적 가수’다! - 프롤로그, 첫 번째 인상(印象)

토마스 박 기자
토마스 박 기자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4/12 07:36

서울대 거문고 전공서 버클리음대 재즈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노래하다…
“첫 찬양앨범 Flying High와 함께 뮤직 비디오 발표하다!”

한국, 아니 전 세계 유명 재즈가수인 나윤선과 말로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뭔가 다른 이혜원만의 음색을, 장르를 찾아내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래야 시애틀 재즈가수를 제대로, 아니 제 입맛에 맞게, 제 입맛대로 소개할 인터뷰 기사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더 나아가 재즈를 달고 살았던 학창시절부터 귀에 익은 마일즈 데이비스와 스탄 게츠 영혼도 다시 들춰냈다. 빌리 할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와 사라 본까지 재즈가수를 좇다 어느새 샹송가수 그레타까지 이른다. 낭패다. 갑자기 인터뷰 글이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그러다 휴지통에 버리고 또 버리고 마침내 살아남은 워드(Word) 반 페이지만 대책없이 벌렁 드러눕는다.

사실, 글쓰기를 포기한 인터뷰다. 밋밋한 일반적 소개 외엔 간직한 인상(印象)을 달리 전달할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바람이 있다면 그의 노래, 음악을 직접 들려줄 요량밖엔!

계속 이혜원의 노래만 들었다. 인터뷰 선입견이 어지간히 글쓰기를 훼방 놓는다. 두가지다.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일단 80년대에 시작된 민중가요 노래패라 적어 놓자)의 편견과 찬양가수의 오독이다.

이혜원의 삶은 결코 즉흥적이지 않다. 한 번도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되물었다.

재즈는 우리네 삶이다. 우리들 사는 이야기다. 삶의 애드립이다. 그래서 따라하기 힘들다. 슬그머니 얹혀갈 요량이면 도통 재즈를 알 도리가 없다. 철저히 자기식이어야 한다. 자기 소리여야만 한다. 살아낸 자기 속내를 드러내야 한다. 그러니 따지면 역사가 깊다. 다만 나눠서 명명하고 분류하고 구분했을 뿐이다. 알만한 사람들이 저마다 제 입맛대로.

이쯤 일본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면 상당히 효과적이다. (하루키는 20세기를 통틀어 재즈에 대해 가장 박식한 작가로 불린다.)

“제일 위험한 건 전문가의 말, 그 다음으로 위험한 것은 그럴듯한 구호다. 이 두 가지는 일단 믿지 않는 게 좋다. 나도 그런 것에 굉장히 속으면서 살아왔다.”

자기 심장을 꺼내야 한다. 손에 부여잡은 심장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박동, 들숨과 날숨 따라 노래하는 것이다. 재즈와 나는 그런 숙명 공동체다. 결코 피할 수 없는.

그래서 더더욱 이혜원이 왜 주춤거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고 싶어 수십 번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도대체 왜, 무엇을 기다리고 의지하려는지 … 무늬만 재즈가수였나?

그러다 그러다, 다시 처음 그녀의 노래로 찾아 들어갔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4집(1994년 발매)에 이혜원이 솔로로 부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처음처럼 들었다.

어렸을 적에 난 무슨 꿈을 꾸었나
나 어떤 사랑 가슴에 품어 왔나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네
여기 딛고 선 나의 삶
어렸을 적에 난 분홍빛 꿈 꾸었네
나 지금 살며 꿈은 지워져 가고
모두가 내게 감당하라 말하네
참고 견디라만 하네
가끔은 걸음 멈추고 하늘을 보면
세월에 텅 빈 가슴 나 이제 그대와
진정 함께 일때까지
나 홀로 걷고 싶어라

나 다시 태어나 세상을 보네
흔들림 없는 투명한 눈빛으로
자유는 내게 마냥 기다리지 않네
가네 무소의 뿔처럼

끝내 가슴에 살아 숨쉬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나 이제
그대와 진정 함께 일때까지
나 홀로 걷고 싶어라

7년 만에 Heavenlee라는 ‘허락되고 쥐어진’ 이름으로 “첫 찬양앨범 Flying High와 함께 뮤직 비디오를 발표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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