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89.0°

2020.08.15(Sat)

[우리들 사는 이야기] 미국 요가 선생의 따뜻한 이야기 - 일곱 번째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5/30 21:50

요가 강사 과정을 마치다

이윽고 트레이시가 나타나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모두를 환영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같이 지내다 보면 여러분은 믿기지 않겠지만 인생의 네 가지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생로병사, 즉 아기가 태어나고, 가족 중 사랑하는 이가 죽고, 아파서 수업에 못 나오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들 말이다. 이 긴 여정에서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모두 같이 가길 원한다. 여러분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들어온 이 문을 1년이 지나 나갈 때는 여러분 모두가 성장하고 변화되어 있길 기대한다.”

트레이시의 말대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고, 부모가 돌아가시고, 결혼 소식을 알려 축하해주고, 이혼을 경험하여 같이 울며 아픔을 나누고, 아파서 입원하여 수업에 빠지는 일들이 생겨났다.

그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요가 스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점점 서로를 알아가고 숙성돼 가는 치즈맛 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23명의 학생들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매주, 혹은 매달 나오는 숙제를 감당하지 못하여, 혹은 임신과 출산으로, 누군가는 다른 주로 이사를 가게 되어 5명이 낙오됐고 18명만이 졸업을 하게 되었다. 인도 여자도 숙제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퇴했기 때문에 아시안은 나만 남게 되었다.

예상과 달리 수업은 실기보다는 거의가 이론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강사의 빠른 영어와 수업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아 죽을 지경이었다.
매주 써내야 하는 숙제, 다른 요가 선생 수업을 뒷좌석에서 참관한 후 쓰는 참관록, 다른 선생 수업에 참여한 뒤 쓰는 수업평가서, 4번의 그룹 세션과 프라이빗 세션(private session)까지 이 모든 걸 마쳐야 졸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일과 요가 수업이 병행되어 진행되면서 공부와 숙제에 치이고, 영어에 자신감을 잃어 몸과 마음이 지쳐 많은 밤을 지새며 포기할까를 고민하고, 나의 부족함에 한탄이 절로 나올 때는 하이웨이를 달리면서 소리를 질러 보기도 하고, 달콤한 위로와 격려가 그리울 때면 달디단 초콜릿을 입 안에 가득 넣고 조금씩 삼켜 가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아무리 집중을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영어 단어들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알아듣는 내용만 내 지식으로 남았다.
안되겠다 싶어 강의를 녹음하고 집에 와서 다시 듣고 노트정리를 하자니 잠자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갑작스레 흰머리가 온 머리를 덮기 시작했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했다 해도 의지력(will power)만으로는 불가능했고 체력 또한 딸렸다.

일요일 저녁이면 혼자 소리쳤다.
‘아, 이젠 더 못할 거 같아. 한계에 도달했어. 너무 지쳤어, 지쳤다고!’ 하면서도 월요일 저녁이 되면, 또 한 달에 한 번 있는 일요일이 오면 나도 모르게 서둘러 가방을 챙겨 요가 학교에 갔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권유와 회유로 미국에 유학 와서 자신의 고충을 누구에게 말할 사람도 없이 나처럼 힘듦을 겪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고 드디어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완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이 날 필요로 했을 때 같이 있어주지 못했음에 마음이 저렸고 용서를 빌었다.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두 아이들 앞에서 무너질 수 없어서, 또 끝까지 가겠다는 내 서약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졸업까지 가야만 했다.

숙제가 나오면 일주일 내내 머리 속에 숙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주로 요가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읽고 나 자신의 삶을 반영해 보는 것들이다 보니, 미국 학생들도 생각하고 쓰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것들이었다.
설사 숙제 내용에 대한 아웃라인(outline)을 잡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영어로 옮겨 써내는 일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쓸 내용을 영어로 옮기는 데만 3일을 붙잡고 낑낑댈 때가 많았다.

마침 그 기간 중에 주말엔 한국학교에서 한국어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내 반의 학생 중 한 명이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 하여 한국학교 수업 후 문장 수정을 해주면 간신히 월요일에 제출하곤 했었다.

이렇게 제출한 숙제가 트레이시에게 가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돌아올 때면 군데군데 그어진 빨간 줄과, 그 밑에 적힌 코멘트를 볼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많은 시간과 생각을 투자하고, 외부의 도움까지 받아서 했는데 여기저기 빨간색 줄이 그어져 돌아온 숙제를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차마 보지 못하고 집에 와서 몇 번의 호흡을 고른 뒤에야 겨우 코멘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빨간 줄이 많은 게 나만의 문제인 줄 알고 크게 실망하여 ‘이렇게 하다가 과연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미국인 학생 역시 빨간 줄로 여기저기 그어진 페이퍼를 받으며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면서 이게 나만의 문제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고 조금씩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빨간 줄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꼼꼼한 트레이시의 숙제 검열은 제대로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했고, 나중에 요가 선생이 됐을 때 자신감 있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맥주 한 잔 씩 하며 각자 직업도 목적도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는 진한 동지애를 느끼곤 했다.
나는 맥주를 마신 후 계산을 하려고 빌(bill)을 달라고 했는데 발음 불량으로 맥주(beer)가 한 잔 더 와서 두 잔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3개(three)를 오더 했는데 나처럼 발음 불량으로 30개(thirty)가 나왔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혼자 웃곤 했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 내 학생들이 한국어를 몰라 겪었던 에피소드가 참 많았는데, 우리 반 20살 학생이 겨우 한국말 읽고 쓸 때 용감하게 혼자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는데 메뉴판에 사진 없이 음식 이름과 값만 써 있어서 어떤 음식을 시켜야 할 지 모르다가 제일 밑에 있는 소주가 2500원으로 가장 싸길래 소주를 음식으로 알고 시켰단다.
조그만 병 하나가 나와서 미네랄워터(mineral water)인줄 알고 벌컥벌컥 마셨다가 음식도 못 먹고 불평도 못하고 완전 취해서 겨우 집에 기어 갔다는 얘기, 수업 시간 변경으로 내가 “사과 드려요” 했더니 한 학생이 수업 후에 날 따라 다니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사과 준다고 했는데 왜 안 주냐’고 해서 설명해주느라 땀 흘리던 일, 교회에서 선교사로 일하시던 분은 첫 시간 자기 소개 시간에 한국에 “성교하러 왔다”고 큰 소리로 말해서 발음 교정해주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학생들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원어민으로서 그저 귀엽고 재밌고 도와주고 싶었는데 막상 내가 그런 위치에 서니 그들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실감할 수 있었다.

드디어 졸업식 날 트레이시는 졸업장을 주며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으로 내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 날 봤을 때 내심 걱정이 많았단다.
한국에서는 대학에서 일을 하고 요가를 했다지만 이 요가 커뮤니티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내 눈과 표정에서 열정을 보고 입학을 허락했단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결석도 하지 않고 숙제도 밀리지 않고 제때 제출하는 데다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마지막 그룹 세션과 프라이빗 세션 모두 훌륭하게 잘 해내서 자랑스럽다고 나를 불러내선 꼭 껴안아 주었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들이 떠올라 눈물이 나서 그녀 품에서 한참을 흐느끼며 울었다.
동료들은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침묵을 지키며 기다려 주었고 단단히 박힌 힘든 기억과 고통들이 녹아내리는 순간에 학생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졸업 파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힘들었던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미래에 펼쳐질 요가 선생으로서의 삶을 기대하면서 떠들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모니카 김 재정 전문가

모니카 김 재정 전문가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