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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럭커의 사는 이야기

아홉 번째 - 내 트럭을 사다

이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이 될런지 모르지만 토인비는 그의 저서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과정으로 정의했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과 문명은 번성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문명은 사라지고 또 도전이 없는 민족이나 문명도 무사안일에 빠져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고대문명과 세계 종교지의 발상지는 좋은 환경과 자연이 아니라 거의 척박한 땅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미국 이민을 와 순탄한 길만 걸었다면 지금처럼 안정된 마음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을까 반문을 해본다.

지인의 배려로 트럭 일을 하게 되었지만 지인도 직접 고객(Customer)에게 일을 받는 게 아니라 미국 브로커에 의해 한두 단계 거쳐 일을 받기에 수송료가 떨어진다. 거기다 팀으로 일하여 세 사람이 나누어 가져야 하니 한 달 내 일을 해도 손에 들어오는 건 2000달러 조금 넘을 뿐이었다.

생활이 안돼 언제 그만둘까 고민하며 일을 했는데 마침 팀으로 일하던 친구가 세탁소를 하겠다고 일을 그만둬 나도 핑계 삼아 그만두었다. 그리곤 시애틀로 다시 돌아와 돈을 들고 LA로 다시 내려갔다. 이번에는 비행기로 갔다.



트럭 스톱(TRUCK STOP)에 보면 중고트럭 판매 광고지가 있다. 유심히 보아둔 트럭이 있어 무작정 그 트럭을 사겠다고 내려간 것이다. 여기서 난 알았다. 영어를 못해도 내가 돈을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든 상대가 내 말을 알아들으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 내가 돈을 받으려 하면 영어가 짧으면 받기 어렵다는 것을...

하여간 내가 원하는 트럭은 광고지에 나온 대로 있었다. 2008년 1월 나는 내 트럭을 샀다. 내가 무얼 알겠는가. 물건을 모르면 돈을 많이 주라 했다. 평소에 복받을 거라 인사 수천 번 들었으니 그 복이 오늘 쓰이리라 믿고 달라는 돈 다 주고 샀다. 중고 PETERBILT 2004년460,000 마일 탄 트럭으로 거의 4만 달러를 주었다.

장거리 오너를 하려면 트레일러도 필요하여15,000달러 주고 트레일러도 샀다. 트럭은 할부로 트레일러는 캐쉬를 주고 샀다. 트럭 할부를 하는데도 미국에 거주한 경력과 트럭 경력으로 이자를 산정한다고 한다. 알 수 없는 계산법이다 생각했지만 내겐 선택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10% 이자 할부로 받았다.

생애 처음 트럭이란 일을 시작했으나 아무것도 몰랐다. 모든 건 무조건 돈이었다. 트럭을 사니 사업자 등록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돈! 트럭 퍼밋과 번호판을 받는다고 돈!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돈! 트럭 셋팅을 해야 한다고 돈! 뒷돈이 자그만치 10,000달러는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당연히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내가 왜 돈, 돈 할까? 여기서 난 또 한국 사람의 멋진 모습을 보았다. 내 일을 맡아서 해주는 LA CPA 한국 사람... 후에 지내보니 바가지, 바가지! 해도 너무했다 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내게 청구했다.

사업자등록도 훗날 스스로 인터넷에서 하니 공짜인데 1,000달러, 장거리 트럭은 48개주 퍼밋을 사야 하는데 2400달러 정도 들어간다. 헌데 그 목돈 자기 주머니에 슬쩍하고 달달이 레지스트레이션을 사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매달 고생하고 WEIGH STATION에서 벌금만 1,000달러이상 물었던 것 같다.

처음엔 왜 잡는지 왜 벌금을 내야 하는지 모르고 그 당시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주를 지날 때 그 주의 퍼밋이 있어야 하는데 퍼밋이 없어 잡는다는 걸 알았고 그제서야 난 일년치를 냈는데 그 CPA는 그 돈 자기가 쓰고 한 달씩 끊어서 레지스트레이션을 사서 보내고 그것도 내가 사정사정해야 마지못해 사서 보내곤 했다

정말 힘들었다. 수시로 레지스트레이션 보낼 때까지 쉬면서 기다려야 하고… 모든 게 돈장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나쁜 사람들이다. 트럭 보험도 크레딧이 없다고 한 달에 1,100달러였다. 그것도 일반 보험회사는 가입을 안 받아줘 주정부에서 하는 보험에 가입하였다. 당시에는 그것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순탄한 시작은 아니었다.

LA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나 같은 오너들 10여명 모아 디스패쳐(DISPATCHER)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브로커 사이트를 통해 일을 잡아주고 8~10%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나도 어떻게 일을 잡아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니 당연히 그들 중 한 사람을 골라 일을 받았다. 나의 트럭으로 2008년도 1월 29일 LA에서 버지니아(VA)로 2707.50달러를 받고 첫 운행을 시작한 거였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떠난 길 이젠 혼자였다. 팀으로 함께 할 때는 미국에 먼저 온 친구가 리드하여 가니 따라갈 수 있었는데 혼자 미대륙을 횡단하려 하니 믿는 것은 오직 네비게이션뿐이었다. 그해 1월 31일 버지니아에 밤새 많은 눈이 내려 첫 운행 자체가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

큰 트럭이 내 것이라는 기쁨과 3일 만에 2700달러의 돈을 받는다는 설레임으로 난 첫 미션을 무사히 마쳤다. 배달을 끝내니 바로 메릴랜드(MD)에서 캘리포니아(CA)로 일을 잡아주었다. 신이 났다. 돈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일주일 운행에 한국서 내가 한 달 일해 받는 돈보다 많으니 절로 신이 날 수밖에... 그렇게 LA에 도착하여 바로 워싱턴(WA) 일을 잡아 2월 10일에 내 차를 몰고 당당하게 집에 도착하였다. 내겐 금색으로 빛나는 멋진 트럭이었건만 식구들은 똥색이라고 말을 한다.

색이야 어떻든 그 트럭이 10년 나와 함께하면서 퇴역할 때까지 100만 마일을 달려주고 딸 셋 결혼시키고 대학졸업 시키고 집까지 사게 해준 복단지였다. 미 48개주를 쉬지 않고 누비고 다녀도 길에서 한 번 서본 적 없고 고장도 많지 않았다.

내 트럭을 구입하여 스스로 일어서기까지 너무 고생이 심하여 난 결심을 했다. 뒤이어 이민을 오는 사람을 위하여 나의 경험을 살려 그들을 도와주기로... LA에 와 보니 한인 트럭커도 제법 있고 한인이 운영하는 학원도 있는데 너무 트럭 일에 대하여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광고가 안돼 나처럼 홀로서기엔 너무 힘든 과정이 많아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벌써 그 글을 써온 지도 12년이 되었다. 처음 글을 시작하여 몇 개월이 흐르니 트럭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인들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민을 와 남자들이 일자리를 못 찾아 가정에서 외면당하고 이민생활 적응이 힘들어 가정불화가 빈번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병아리가 노란 색깔도 벗기 전에 어미 노릇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이민을 오려 하는 사람, 미국에 정착 못하고 갈등 속에 있는 사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갈 길을 못 찾은 사람, 트럭을 하고 싶은데 길을 모르는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연락오기 시작하였다.

오늘 어디를 간다하면 그 지역에 사는 분이 승용차로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수십 마일 심지어 백 마일이 넘어도 찾아와 자기 집에 데려가 재우고 반찬까지 싸주며 다음을 기약하곤 하였다. 그때부터 트럭 일을 원하는 사람에겐 한 달씩 트럭에 태우고 다니면서 내가 하는 일을 보여주고 선택권을 주었다.

그렇게 나로 인하여 트럭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20여 명이 넘고 지금은 상당한 사람들이 트럭 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안다. 남을 도와주면서 트럭으로 E-2가 된다는 것도 알아 두 사람이 E-2로 트럭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영주권을 받아 잘 사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내 트럭을 타 보고자 무작정 오시는 분들을 집에서 재우고 밥까지 해 먹이며 미국서 기반도 안 잡힌 상태에서 불편한 생활도 마다한 가족들이 있었기에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난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내가 도움 준 분들에게 더 받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내가 사는 시애틀에도 나 때문에 근처로 이사를 와 함께 트럭 일하는 사람도 몇 된다. 보람된 일이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혹시 나중에 사기를 치려고 저러는 거 아닌가. 돈이라도 받았겠지 하지만 오 십여 명 나를 거쳐 갔지만 그 분들에게 단돈 1센트도 안 받았기에 지금도 난 보람으로 생각을 한다.

덕분에 지금 행복하고 잘 살고 있다. 고맙다 그 말 한마디로 난 보상을 다 받았다. 그런데 나름대로 기쁨을 갖고 일을 하고 열심히 미 전역을 누비고 다니는데 일한 돈이 잘 입금 안 된다.

분명 일을 끝내면 미국 브로커는 이삼 일 안에 일한 대금을 입금시킨다고 들었는데 디스패쳐한테 전화를 하면 아직 입금이 안 되었다, 반만 입금되었다 하면서 돈을 제대로 안 주는 것이었다. 분명 중간에서 디스패쳐가 돈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가 일한 돈 갖고 엄청난 장난을 하고 있었다.

왜 난 LA에서는 제대로 된 사람을 못 만날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첫 운행에서 받은 2707.50달러의 돈이 왜 소수점으로 계산되어 지불되는지 후에야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필자 김종박 약력

중앙대 부속 중고 졸
육군 삼사관학교 18기
영주전문대 경찰행정 졸
동양대 사회복지과 졸
사회복지사
현) 코리아 시애틀 익스프레스 오너 및 오퍼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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