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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잠긴 이웃과 함께 고통을 나누자

4월의 봄이 시작됐다. 고립된 가운데 맞이하는 봄은 홀로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고 푸르러 가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4월이 되면 생각나는 T.S. 엘리엇의 시가 이번처럼 가슴에 사무친 때가 없었다. T.S. 엘리엇에게 노벨문학상을 선사한 작품으로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황폐화되고 암울한 유럽을 상징화한 작품이다. 그가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그 당시 4월은 황폐한 모습 그 자체였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 T.S. Eliot의 'The West Land' 중에
지금 유럽의 모습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사태 이후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요즈음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왠지 눈물이 난다. 어제까지 웃고 떠들고 노래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온 재앙에 차가운 시신이 되어 관에 실려 화장터로 가 유골함이 돼 가족을 찾아간다. 코로나19의 특성상 사람간 감염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사랑하는 가족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갔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노래하길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파트 발코니에 나와 제각기 악기를 연주하고 함께 노래함으로 이 슬픈 상황을 이겨내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 마음이 아팠다. 2020년 4월은 우리들 가슴 속에 가장 잔인한 사월의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곳 미국의 코로나19 상황도 4월에 접어들며 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8일 기준 미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42만명, 사망자는 1만4천명이 넘었다. 전세계 150만명의 누적 확진자 수 4분의1을 넘어선 비율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단 2주만에 뉴욕주에서만 12만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4천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보도가 들려온다. 워싱턴주도 사망자 수가 400명을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주와 다음주가 가장 큰 고비라며 가장 잔인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코로나19 TF브리핑에서 말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뉴욕은 전시상황이다. 군인들을 동원해 도시봉쇄를 고려 중인 뉴욕은 전염병과 전쟁 중이다. 이곳 워싱턴주 지역은 확진자가 줄고 수그러드는 양상이지만 지금 뉴욕의 상황은 몇 달 전 중국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미국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일반인인 필자도 벌써 1월초에 중국발 코로나19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언제 이곳에 닥쳐올지 모를 사태를 대비해 온라인으로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주문했었다. 그런데 정부에선 그때까지 만해도 사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마스크나 의료장비조차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미국시민들은 실망하고 분노한다.

그 심각성을 일찍 깨닫고 준비했더라면 이토록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에 미국은 뒤늦은 대책마련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미국시민들조차도 정부의 외출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더워지는 캘리포니아주 지역과 플로리다주 지역에선 사회적 거리를 지키라는 정부 명령을 조롱하는 듯 젊은이들이 해변으로 쏟아져 나와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그 결과 몇 백명이 넘는 집단 확산이 나왔다고 전해지는 소식을 듣고 자기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을 향해 "너희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너희 때문에 더이상 볼 수 없게 될 수 있다"라고 외치는 뉴욕 주지사의 말을 떠올린다.

한 달 전 주문한 손세정제는 벌써 도착해 잘 사용하고 있지만, 마스크는 도착 날짜가 계속 미뤄져 기다리고만 있다. 이런 가운데 남편이 홈디포 등에서 파는 마스크를 구해와 집에 필요한만큼 비축해 놓았다. 미국정부에선 이제서야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쓸 것을 권고하고 나오며 트럼프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일반시민은 외출시 마스크가 아닌 스카프라도 쓸 것을 권하고 나섰다. 당장 필요한 의료진들에게 마스크를 양보하자는 운동엔 찬성하지만 지난달 초부터 국민들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더라면 대도시에서 발생한 급격한 확산은 막지 않았을까 싶다.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마스크 하나를 하루 종일 쓰고 매일 하나씩만 착용할 수밖에 없는 마스크 부족과 가운과 방호복 부족으로 인해 검정 쓰레기 봉투를 둘러 입은 간호사들의 사진을 보며 정말 안타까웠다. 조금만 일찍 이런 모든 의료장비들을 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세계 리더를 자처한 미국이 독일과 프랑스가 선주문한 3M 회사의 마스크를 웃돈을 주고 가로챘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뒤늦은 대처로 자국민을 살리겠다는 미국정부의 이러한 행동은 비난받기에 충분하다.

뉴욕 등 동부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소식에 그곳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지인이 너무나도 걱정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비상사태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주가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이며, 10일은 성금요일이다.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되짚어 보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우는 자와 더불어 그들의 고통과 눈물을 함께 나누며 오는 12일 부활주일을 진정과 신령으로 맞았으면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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