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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 이 또한 큰 감사라

월요일, 월요병이 스멀스멀 덮쳐왔다. 이런 날엔 잠시 일을 밀쳐두고 바깥바람을 쐬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애틀랜타 한국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선생님 한 분을 불러내 차 한잔을 시켜놓고 수다를 떨었다. 차를 마시던 그녀가 내게 칭찬을 퍼붓는다. “선생님, 그간 열심히 사셔서…!” 세상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부지기수지, 어디 ‘나’뿐이냐고 반문을 했다. 열심히 살아도 사람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일이고 인생사라, 매사 감사하며 살다 보니 비로소 마음에 평안함이 깃들고 감사가 차고 넘치더라고 화답했다. 아, 그 순간 “감사할 줄 아는 것도 축복이에요!” 겸손한 그녀는 그녀다운 금언을 내 가슴에 내려준다.

감사의 달, 11월! 감사할 일을 떠올려보니 올해는 정말 감사할 일이 굴비 엮이듯 줄줄이 늘어 서 있다. 지난 목요일, 한 통의 긴 편지를 받았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이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가 노란 봉투에 정성스레 쓰여있는데 수신은 분명 이옥순이다. 봉투를 받고 뜯기 전까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내 심장은 벌렁거렸다. 낯선 편지를 받게 된 경로가 조금 특별했기에. 며칠 전, 목소리에서 연륜이 묻어나는 한 남자가 애틀랜타 한국학교로 전화했더란다. ‘미국에서 35년을 살고 있는 한인’이라며 이옥순 선생에게 해줄 말이 있어 애틀랜타 한국학교로 편지를 보낼 테니 꼭 본인에게 전하라고 명하셨다는 전언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민 10년, 무지한 천둥벌거숭이가 애틀랜타에 살면서 잘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량한 글 쓴답시고 함부로덤부로 발언해 한인들의 가슴을 후벼 파진 않았는지, 문득 되짚어보니 무섭고도 죄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편지지만큼 크고 묵직한 노란 봉투, 떨리는 두 손으로 단박에 겉봉을 뜯었다. 편지 두 장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애틀랜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내 글을 통해 나를 많이 알고 계신 올해 여든한 살의 어르신. 글을 잘 읽고 있다며 과찬을 해주시고 몇 가지 조언과 당부, 그리고 과제를 주셨다. 고령임에도 그 총기(聰氣)가 팔팔한 젊은이 못지않고 명민한 어른임을 행간에서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발전하는 한인사회의 모습을 묵묵히, 뜨거운 시선으로 오랜 세월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무던히 애써 오신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어르신의 노고와 깊은 관심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정중히 감사드린다.

정갈한 손 글씨로 장문의 편지지를 가득 메운 내용은 동포사회의 이모저모를 알려주는 애틀랜타 일간 신문사들이 외래어 표기를 할 때 종종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또한, 신문사마다 같은 외래어를 달리 발음한다는 지적이었다. 예를 들면 ‘Super’라는 단어를 수퍼’와 ‘슈퍼’로 신문사마다 다르게 표기하는데 이는 영어의 원어 발음으로 표기해야 Konglish를 면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밖에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기 위해
몇 가지 개선점을 지적하셨다. 나도 매를 한 대 맞았다. “ 이 선생님의 Column 중에 교민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3, 4년 전에 한국 정부의 지시에 의해서 동포라고 표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실 ‘동포’라는 단어가 북한에서 상용해서 그런지 그 어감이 나는 불편하다. 해서 ‘교민’이라는 말을 썼다. 동봉한 자료들을 분석하며 깊이 공감하고 낯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우리말! 맘껏 읽고 쓸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뼛속까지 감사하고 사랑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올바르게 사용하리라.



설익은 글을 중앙일보로 급히 발송하고 나면 낯 뜨거워 잠을 설치는 날이 여러 날. 글을 써서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만둘까’를 수없이 되뇐다. 그래도 나는 써야 한다. 독자들의 관심과 응원, 따뜻한 시선이 나를 부축해 여기까지 끌고 왔기에. 오늘 내가 지면에 삶을 풀 수 있음도 어르신처럼 음으로 양으로 우리말을 지켜온 열정 많은 파수꾼 덕분이리니, 이 또한 큰 감사다. 어르신께서 보내주신 사랑과 일침이 내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올 한해 내 삶에 진주 한 알이 더 꿰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난 내 삶이 거죽만 남을 때까지 글을 쓸 작정이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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