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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칼럼] 꽃보다 할매

언젠가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배운 지혜를 나눈 것을 모은 작은 책자를 보고 반은 호기심으로 또한 반은 흥미로 페이지를 넘기다가 나이에 따라 관점이 다름이 재미있어 노트에 몇 적어 놓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무엇인가 가르쳐 줄 것을 가지고 있다 (51세)/ 인간의 가장 큰 부는 선택의 자유이다 (62세)/ 무엇인가 계속 배우는 사람을 통해서 많이 배운다 (62세)/ 교육과 체험 그리고 추억은 아무도 앗아갈 수가 없다 (67세)/ 사람은 행복하려고 마음 먹은 만큼만 행복하다 (79세)/ 노새가 턱시도를 입어도 역시 노새다 (80세)/ 비록 고통을 받더라도 남에게 고통이 될 필요가 없다 (82세)’

이런 꾸밈없고 수수한 교훈 중에 “비록 고통을 받더라도 남에게 고통이 될 필요가 없다.” 얼마나 멋진 철학인가. 누군가82세에 터득한 삶의 지혜는 나를 돌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선다. 최근에 삐걱이는 신체의 변화에 적당히 타협하며 자신은 고통을 받더라도 남에게 기쁨을 주고 사는 멋진 두 여자를 만났다. 프란시스는 한 20년 사귀었지만 캐롤라인은 며칠 전에 처음 만났다. 세월의 흐름을 타면서도 열심히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두 여인. 진정 아름다운 ‘꽃보다 할매’다.

프란시스는 사회정의에 관심이 많다. 평생을 교육과 봉사에 헌신하고 아직도 많은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여하는 남부에는 드문 민주당 활동가다. 그녀 말대로 의식에는 정년 퇴직이 없다. 그녀는 새로 백악관을 차지한 대통령의 언행에 학을 떼어서 선거 후 케이블을 끊고 한동안 제인 오스틴과 추리 소설을 읽었지만 나라 사랑을 위해 다시 팔을 걷고 나섰다. 미국정가에 경험이 많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없다며 한탄하는 그녀는 앨라배마 대표가 아니라 애리조나주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혼란에 빠진 미국 정계를 바로 잡아달라고 편지를 쓴다.



캐롤라인은 여행벽이 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니며 살았고 또한 그녀도 군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남편의 해외 근무지를 따라 여행할 기회가 많았다. 세상은 보고 또 봐도 못본 곳이 많다며 그녀는 늘 지도를 펼쳐놓고 다음 여행지를 구상한다. 그녀가 2년 전에 스페인에 가서 순례길을 걸었다는 말에 내가 솔깃했다. 나도 스페인의 순례길을 두 번이나 걸었으니 우리는 쉽게 통했다. 그녀는 주로 혼자서 여행을 다닌다. 마음 편하게 낯선 지역을 다니다가 좋으면 머물고 싫으면 후딱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습관을 가졌다. 부럽게도 그녀는 인도를 열차로 한바퀴 돌았고 네팔 같은 오지도 여행했다.

그녀가 작년에는 노르웨이에 가서 해변을 끼고 있는 많은 섬을 다니며 우편을 배달하는 우편선을 타고 좋은 여행을 했다는 바람에 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픈 고양이 간호하느라 이번 겨울 나는 주로 다큐멘터리와 여행작가들의 사진을 통해서 간접 여행을 한다. 그중 나를 사로잡은 여행지가 노르웨이 해안을 끼고 도는 우편선 여행이다. 오래전 스웨덴을 관광하다가 국경을 넘어가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보고 왔다. 하지만 노르웨이 관광부가 열차 여행과 우편선 여행을 홍보한 비디오에서 산과 강과 바다, 천연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했는데 캐롤라인이 다녀왔으니 내가 흥분할 수 밖에. 올해는 캐나다를 동부에서 서부로 횡단할 계획을 가진 그녀 더러 나도 함께 가자고 졸랐다.

그리고 나이가 80이 넘으면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혼자 다닐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싱긋 웃으며 “물론 나이를 속이고 다녀” 하는 바람에 폭소를 터뜨렸다. 전산화가 된 요즈음에도 나이를 속일 수 있다니 아무튼 그녀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여행지에서 힘이 들면 그냥 서서 작은 목소리로 “Help! Help!” 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소된다며 그녀는 자신의 여행 비결을 알려줬다.

운전해서 가고 싶은 곳 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두 여자는 놀랍게도 올해 나이 90이 된다. 그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의 자세는 나를 고무시킨다. 나는 그들처럼 나에게 충동을 주는 사람이 좋다. 기존 관념을 탈피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의 문을 열어주는 이런 ‘꽃보다 할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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