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태종수 칼럼] 체크아웃 기부 요청

대형 그로서리, 약국 또는 편의점 등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할 때 점원이 1~2 불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냐고 물어보는 일이 종종 있다. ‘체크아웃 채리티(checkout charity)’로 알려져 있는 자선 모금 행위다. 대개 많은 고객들이 선선히 응한다. 미국에서 살면서 내가 감동한 것 중에 이곳 사람들은 기부와 자선에 무척 너그럽고 자원봉사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남을 도와준다는 일에 발벗고 나서는 행위가 생활화 되어있는 문화다. 요새 한국의 기부문화가 많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미국 오기 전 1960년대 한국에서는 별로 볼 수 없었던 상황이다. 그때는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어려운 시기라 모두들 제 앞가림하기에 바쁘기도 했지만 현대 서양식 기부문화는 우리에게는 낯선 것 아니었나 싶다.

물론 우리에게도 전래하는 이웃간에 서로 돕는 상부상조하는 전통도 있고 ‘적선(積善)’도 있다. 착한 일(善)을 많이 쌓으라(積)는 뜻의 적선은 동냥질하는 거지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그 본래 의미는, 없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라는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신분사회에서 지배층에 있던 양반 사대부들에게 그 실천이 요구된 사회윤리다.

며칠 전 그로서리 체크아웃 계산대에서 생긴 일이다. 바로 내 앞에 중년의 백인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의 마지막 물건을 스캔하고 난 캐쉬어가 모 자선단체에 1불을기부하겠냐고 물었다. 대개 그러겠다고 하거나 “오늘은 안 하겠어요(Not today.)”가 보통인데 그 여자의 답변은 의외였다. “우리 집 아이들 대학 학자금 기금에 기부할래요?(Would you like to donate to my children’s college education fund?)” 잠시 멈칫 당황한 기색의 캐쉬어가 말없이 영수증을 건네 주었다.

조금 오래된 일이지만 캐쉬어의 1불 기부 요청에 이렇게 응대하는 고객도 본 일이 있다. “내게 2불만 줄 수 있어요? 그럼 내가 당신에게 지금 1불은 여기서 기부하고 이따 오후에 이 가게에 다시 올 일이 있는데 그때 또 1불을 기부할게요.” 나는 다소 야비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기부 안하겠다고 “No thanks.”했으면 되었을 것을. 솔직히 캐쉬어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그들은 점포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를 따를 뿐이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캐쉬어들에게 동정도 간다.



체크아웃에서 하는 이런 기부 요청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긴 체크아웃 줄 앞에서 충동적인 소액 기부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갑자기 중인환시리에 자신의 자선심이 도마에 오른 기분이 된다. 주위에 있는 뭇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설사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도 기부를 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 모금행위가 예컨데 해외에서 싸우다 부상한 군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라. 1~2불 때문에 느닷없이 비애국자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돈을 주고 나서도 선행에 따르는 즐거움이나 만족감은커녕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스토어를 나서게 된다. 애당초 스스로 자원해서 자의로 한 행위가 아니고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는 주위의 압력에 굴복했기 때문에 주고도 마음이 찜찜한 것이다. 이런 기부 요청은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 기부 강요 행위라고 보고 갈취(shakedown 또는 extortion)라는 심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식으로던 기부행위 자체는 선행이며 또 매우 필요하기도 하다. 나도 처음에는 별 깊은 생각없이 또 기부대상이 누군지 귓등으로 흘리며 이런 소액 기부를 하곤 했다. 내가 체크아웃 기부를 멈춘 것은 어느 날 기부 대상이 ‘집 없는 강아지(homeless puppies)’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다. 개에 대해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아니나 비록 단돈 1불이지만 그보다는 더 필요한 일들을 돕고 싶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대형 비지니스들의 인간심리를 이용한 기회주의적인 체크아웃 모금 행위에 기부하기를 거절하게 되었다. 내일의 선행을 위해서 오늘은 잔인해지자(“You must be cruel only to be kind.”)는 햄릿의 심정으로.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