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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고양이와 마지막 춤을

왕성한 봄기운으로 화사한 세상을 외면하고 집안에 꽁꽁 숨어 지내다 조지아 주에 사는 작은딸네를 찾아왔다. 얼굴을 마주하고 전해줘야 하는 소식이 있다.

우리집 반려동물 고양이 로키의 원주인은 작은딸이다. 버밍햄에서 로키를 입양해 의지하며 살던 딸이 해외로 가며 잠시 맡긴 로키가 우리 집을 제집으로 만들었다. 로키는 가구 위를 뛰어다니며 장식품을 밀어뜨리고 냉장고 위나 카누피 침대 위도 곡예사처럼 제멋대로 다녔다. 한번은 8 피트가 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끌어내려 유리 장식을 모조리 파손시켰다. 나아가 터줏대감이던 개가 헉헉거리도록 약을 올리며 짓궂게 굴었다. 고양이보다 개를 선호했던 나는 개와 고양이가 집안을 설치고 다니며 말썽을 피우면 늘 개의 편을 들었다. 멀찍이서 냉랭하게 나를 주시하던 고양이보다 내 그림자로 나를 따르며 정을 주던 개를 더 사랑했다.

개가 죽은 후 로키는 집안을 어슬렁거려도 사고를 치거나 말썽을 피우지 않고 나의 관심밖에 머물었다. 하루 종일 어딘가 숨어있다 남편의 퇴근시간이 되면 나타나서 문 앞에 앉아 기다리다 남편을 반겼다. 덕분에 남편은 나보다 로키를 더 찾았고 부지런히 로키의 간식거리를 들고 왔다. 로키는 마치 개처럼 행동하며 남편을 쫄쫄 따라다녔고 남편의 가슴에 안겨서 함께 TV를 보다가 아예 남편 옆으로 잠자리를 바꿨다. 누운 남편의 배위에 퍼지고 누워 사랑을 독차지하는 정경이 귀여웠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나와 로키는 그저 무관한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형편이 안정된 딸이 로키를 데리러 왔다. 나는 좋았지만 남편이 로키를 돌려주길 완강하게 거부한 바람에 로키는 완전히 남편의 차지가 됐다.

공존하던 우리의 상황이 바뀐 것은 작년부터 였다. 특히 지난 4개월 로키는 우리 부부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뚱뚱보가 홀쭉이가 된 것이 보기 딱해서 나는 열심히 간호했다. 억지로 먹이를 강요하는 나를 피해 숨던 로키를 찾아 매일 온 집안을 뒤집고 다녔고 전혀 상상 밖의 장소에 숨었던 로키를 찾아내서 이런 저런 음식을 줘도 정작 먹지 않아서 속이 탔다. 어쩔 수 없이 주사기로 물과 음식을 반강제로 조금 먹이는데 거의 한시간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입을 꽉 다문 로키와 이런 고문같은 씨름을 하루에 서너번 했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우리는 서로를 괴롭히며 슬슬 지쳐갔지만 동시에 친해졌고 로키는 편안하게 나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로키의 체력은 빠르게 떨어졌고 행동반경은 좁아졌다. 그런 로키를 주시하며 심리적 압박감을 받았다. 기운없어 웅크린 로키에게 단백질 음료를 한방울이라도 더 먹이려고 괴롭히다가 거친 숨소리를 들은 날, 얼른 수의사에게 전화했다. 로키에게 병원에서 신비의 주사를 맞으면 기운을 차린다고 자신 있게 말해줬다. 그런데 막상 의사를 만나니 로키는 잠잠했다. 눈이 부시게 화창한 봄날, 로키는 그렇게 떠났다. 생명의 불꽃이 소진한 로키를 담요에 싸서 안고 몸에서 체온이 떠날 때까지 쓰다듬었다.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세월을 감사했고 무지했던 나의 소치를 사과했다. 그리고 차별했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음을 사과했다.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했던 많은 세월은 나에게 고양이를 이해하게 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교감하며 살다 보니 누가 사람이고 누가 동물인지 불분명하다. 로키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와 로키를 잃고 마음을 추스리느라 힘들어 하는 남편으로 집안 공기가 무겁다. 아직도 발아래 어른거리는 로키가 눈에 잡혀서 집안에 흩어져 있는 로키의 물건들에 손을 대지 못하고 응접실 한쪽에 덩그러니 선 스크래칭 포스트도 외면한다.

로키와의 인연을 시작한 딸에게 로키의 죽음을 알렸다. 어쩐지 로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직감으로 불안했다는 딸의 충혈된 얼굴을 보며 미안했고 내가 지키지 못한 책임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성숙한 딸은 이해했고 그동안 잘 돌봐줘서 고맙다 했다. 우리는 북유럽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말썽꾸러기 신의 이름인 로키로 불려진 우리집 고양이가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살았던 추억을 회상하며 상실의 아픔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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