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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포근하고 아늑한 잠

지난 서너 달 사이에 내 고등학교 동기생 네명이 저 세상으로 갔다. 한국에서 최근 작고한 동기의 부음을 전한 친구가 곁들여 하는 말이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말야,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그 사람 살만큼 살았군 해”.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한 두보의 시구에 스스로 자족하며 70을 넘어서면서부터 일부러 나이 들추기를 자제해 왔던 터였다. 그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80이 내일모래라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유행가 가사 말마따나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온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떠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까? 별로 생각해 보고싶지 않은 의문이다. 또 생각하면 우울해 진다. 그러나 우리 나이쯤 되면 거의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다. 솔직히 내 나이 70의 문턱을 넘은 이후 죽음은 자주 생각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죽는다는 것은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인생만사가 거의 다 그렇듯 우리에게 닥아올 마지막 순간 또한 불가사의다. 우리가 갖는 죽음에 대한 연상은 대개 부정적이고 자신의 죽음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별로 탐탁한 일이 아니니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다.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추측과 예상과 희망이 있을 뿐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그 많은 종교가, 지성인, 과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영원한 수수께끼다. 물론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내세에 대한 해석과 비전이 있고 신념이 있다. 내세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과 신념이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매일의 생활에 정신적 위안과 도움을 준다면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젊은 사람일수록 더 심하다고 한다. 7~80대 노인들은 오히려 평상심을 갖고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살아갈 날들이 빠르게 줄어 들고 죽음이 현실로 닥아오는 데 대한 현명한 대처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 필연일진데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려 들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마음의 평온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갖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대체하는 마음가짐에도 통한다. 공포영화 ‘싸이코’로 유명한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끝장이 어떻게 날지는 죽어봐야 안다고 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 수십, 수백억년동안 죽어 있었는데 전혀 불편을 못 느꼈다”는 마크 트웨인이나 “죽음은 삶보다 더 흥분되고 마음 설레는 일”이라고 한 2차 대전의 명장 조지 패튼의 말은 다 이런 맥락이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을 잠에 비유한다.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이니 곧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독백중에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오직 그뿐”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 ‘잠’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3분의 1 이 잠자는 시간이라고 한다. 먹지 못하고 살 수 없듯이 잠은 꼭 자야 한다. 잠도 여러가지다. 제일 바람직한 잠이 한자로 숙면(熟眠)이다. 우리 말로는 깊은 단잠일 것이다. 제대로 못자는 잠에 겉잠, 선잠 또는 집 밖 아무데서나 제대로 덮지도 못하고 자는 한뎃잠도 있다. 꿈꾸는 잠도 편한 잠은 아니요 그 꿈이 악몽일 경우에는 자지않음만 못하게 된다. 햄릿도 꿈을 꾸는 잠을 걱정해서 “잠이 들면 아마도 꿈을 꾸겠지; 아, 이게 문제야.”하고 망설인다.

내세를 전제로 하는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완전한 죽음이란 불가능하고 잠이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죽는것이 영원한 숙면에 빠지는 것이라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고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꿈없는 깊은 단잠에 영원히 빠져들어가는데 걱정할 것이 무언가? 그 잠이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이라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죽음을 기리거나 자살을 부추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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