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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관계의 미학

옛날에는 원숭이를 잡으려면 호리병에 사탕 세 알을 넣어 두었다고 한다. 원숭이가 호리병 안에 손을 넣어 사탕을 쥔 채 손을 빼려고 용을 쓰는 동안 사람들이 원숭이를 잡았다고 한다. 원숭이가 잡힌 건 결국 사탕 세 알 때문이란 소리다. 그 사탕 세 알을 움켜쥔 손만 놓으면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원숭이는 그 손을 놓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손에 움켜쥐고 사는 건지.

안온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분명 나이 듦의 징조다. 언젠가부터 모임에 참석하거나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에 마음과 몸이 부대낀다. 하기야 젊어서부터 긴밀한 인간관계로 맺어진 사람이 아니면 만나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열정적인 삶은 역시 체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요즘 부쩍 느낀다.

사실, 올해 초부터는 잦은 모임에 참석하는 일을 삼가고 있다. 특별한 일 없이 지인들을 만나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줄였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사람을 직접 만나기보다는 이메일로 대신하고, 지인들하고는 문자 메시지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바쁜 일상을 해내느라 심신이 피곤한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일상을 정리해서라도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절약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바쁘게 사는 게 싫다. 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 법률상의 노인(메디케어가 있는 나이)도 아닌 내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조급함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달 전에 갑작스레 동생을 잃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인생이란 게 내 각본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혹사하는 삶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삶을 간결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상의 다운사이징을 시도하였다.



나에게 ‘간결한 일상’이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직 밥벌이의 현역에서 뛰는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인간관계나 모임을 정리하지 않고는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은 참석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어찌 보면 너무나 이기적인 발상 같았다.

만남이 소원해지면 관계도 틀어질 것으로 생각한 것은 기우였다. 처음에 지인들과 연락을 끊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려니 망설여졌다. 내가 너무 폐쇄적인 것은 아닌지, 이러다 친구가 다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사회생활에서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했다. 그러나 관계에서 멀어지니 그 관계의 진정성도 보였다. 인간관계에서 마음을 비우고 나니 오히려 만남이 자유스러워 졌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안온한 일상을 갖기 원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내가 숨 쉬는 이 순간의 귀중함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은 자연의 섭리다. 떨켜의 물기가 마르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번잡한 관계의 옷을 벗어야 간결한 삶을 얻을 수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인생사의 이치가 아닐는지.

이제 나는 꼭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설사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잠자는 것이더라도, 피곤함에 밀려 졸음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잠을 잔다. 이 만족감이 먹고 사는 일에도 즐거움을 더하는 것을 보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할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결승점을 향한 경마장의 말처럼 뛰던 내 삶은 이제는 여유롭다.

온종일 바쁘다고 볼멘소리를 하고서도, 누군가 부르면 퇴근 후의 피곤한 몸으로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라. 삶이 간결해야 나 자신의 삶을 볼 수 있다. 인간관계의 정리는 상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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