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영 그레이 칼럼] 사랑 사랑 내 사랑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든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사랑의 묘미를 체험하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한번이 아니라 연거푸 남의 사랑이야기를 알게되면 둔한 감성을 가진 남편도 힌트를 얻고 나와의 사랑을 소중하게 느끼리라 생각했는데 남편은 나를 실망시켰다. 그는 연극은 끝까지 봤지만 3부로 나뉜 오페라의 생중계는 1부만 보고 지루하다 불평하며 극장에서 나갔다. 남편의 가슴에서는 사랑의 에너지가 나오지 않아서 나는 혼자 손뼉을 칠 수가 없었다.

앨라배마 주립극장에서 본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첫 정경은 충격적이었다. 무대 3면에 설치된 거대한 화폭들은 강한 폭풍우로 넘실거리는 거친 파도를 영상 처리해서 암울한 환경을 조성했고 그 앞에 조난 당하는 배를 탄 사람들이 우왕좌왕 했다.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마술을 익혀 복수의 칼을 갈았던 푸로스퍼로의 증오가 펼쳐내는 사건의 전개를 따르다가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사랑에 혹했다. 어른들의 복잡한 심사에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은 풋풋하고 솔직하게 가슴과 영혼이 하나로 교감했다. 이들의 동화같은 사랑은 어른들의 꼬이고 얽힌 스토리 전개를 도운 강력한 보조 스토리로 자리매김했다.

연극은 푸로스퍼로가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사랑을 결실시키고 자신을 배신한 동생과 왕, 모두를 용서하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연극은 현대어로 번역된 작품이라 감각을 따르는 것이 셰익스피어 시대 고전어보다 훨씬 쉬웠던 덕분에 배우들과 쉽게 일치감을 가졌고 무대 공연을 보는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템페스트’ 연극에서 중세 이탈리안 사랑을 느낀 다음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HD생중계 ‘유진 오네긴’에서는 19세기 러시안 사랑의 묘미를 봤다. 러시아에서 영국의 셰익스피어 같은 명성을 가진 대문호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산문시 ‘유진 오네긴’을 차이코프스키가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 출신 오페라 가수들이 강한 자부심으로 시와 음악이 어울린 극적인 열연을 펼쳤다. 섬세한 감성의 시골 처녀인 타티아나가 세련미 있는 귀족 오네긴을 보자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타티아나가 밤잠을 설치며 사랑을 고백한 편지를 써 보낸 것을 시니컬한 오네긴은 냉정하게 되돌려준다. 보태서 앞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조심하라는 충고까지 주며 첫사랑에 빠진 타티아나를 절망시킨다.



훗날 상트페테르부르그의 파티장에서 두 사람은 극적인 해후를 한다. 여전히 삶의 지루함을 노래하는 오네긴 앞에 우아하고 당당한 공작부인으로 타티아나가 나타나자 이번에는 오네긴이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과거 받았던 충격에서 교훈을 받았다. 솔직히 아직 오네긴을 사랑하지만 현실의 상황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그의 구애를 거절한다. 옳고 그름의 도덕적 관념을 가진 타티아나가 그녀의 비극적인 사랑에 마침표를 찍자 이번에는 오네긴이 절망했다. 사랑의 화살표가 두 사람의 가슴에 타이밍이 맞게 꽂혔다면 그들의 사랑은 절대적 진리로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특히 이 오페라에서 타티아나의 자매인 올가를 열렬히 사랑한 렌스키의 비극적인 사랑도 중요하다. 활달하고 밝은 성격의 올가가 장난기를 부린 오네긴에게 관심을 주자 질투에 고통받던 렌스키가 오네긴에게 결투를 선언하고 두 사람은 친구에서 적으로 서로 총을 겨눈다. 오네긴의 총에 맞아 죽기 전에 렌스키가 부른 올가를 향한 사랑의 노래는 타티아나의 애절한 사랑의 고백과 일맥상통한다.

푸시킨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이틀 나를 먹먹하게 한 사랑 타령을 마무리 시켜준다. 내가 즐겨 읊는 것은 오래전 백석 시인이 번역한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 것이니/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이 시의 ‘삶’을 ‘사랑’으로 바꾸어 나의 경우에 적용해보니 재미있다. 나와 생각이나 감정, 의견과 인식 등이 전혀 다른 남자와 참 오랫동안 보조를 맞추며 ‘사랑 사랑 내 사랑’했다. 오페라의 2부와 3부의 극적인 공연을 보지 않은 남편과의 사랑 타령은 무의미하다. 사랑의 불꽃이나 타이밍이 무색한 우리 부부의 사랑 나눔은 차라리 연민에 가까운 끈적한 인간애이고 세월이 심어준 평온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