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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중국을 사랑한 ‘대지’의 작가 펄벅

장강변의 전장(鎭江)은 풍광이 수려하고 문화유적이 풍부한 천년고도다. 전장은 <대지> 의 작가 펄벅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살았던 펄벅의 고거(故居)와 기념관이 시내에 있다. 우리 부부가 이곳에 체류할 때 가끔 산책 가던 곳이다.

펄벅은 생후 석 달 만에 선교사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이곳에서 성장했다. 전장은 펄벅이 18세 때 대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중국에서 부모와 함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이 중국인인 줄 알았다고 술회했을 정도였다. 펄벅에게 미국은 태어난 모국일 뿐 피상적인 이미지의 나라였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중국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굳센 땅으로 느껴졌고, 중국 사람들의 삶이 더욱 친숙하게 여겨졌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는 백인인 펄벅의 어머니가 신을 분노하게 만들어서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해 어느 날 밤 사람들은 펄벅의 집으로 몰려왔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다.

잠시 뒤 거리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열린 대문을 통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들어와 차라도 한잔 드세요”하며 정중하게 권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그들은 구석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그 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1910년 펄벅은 어머니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미국으로 돌아가 랜돌프-메이컨 여대에 입학한다. 대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온 펄벅은 한 남자를 만난다. 중국에 선교사로 온 존 로싱 벅이었다. 1917년 둘이 결혼하면서 펄 시던스트라이커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펄 벅이 되었다. 펄벅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난시저우(南徐州)로 갔다. 첫 딸 캐롤이 태어날 때까지 결혼 생활은 겉으로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캐롤이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펄벅은 절망한다. 장애아를 낳는 것이 부모의 탓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대지> 는 사실 중국의 황량한 시골 난시저우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 낳은 딸 캐롤에 의해 쓰여진 소설이나 다름없다. 캐롤은 장애아였다. <대지> 는 출판되자마자 ‘이달의 북클럽’에 선정되면서 폭발적인 판매량을 올렸다. 1932년 펄벅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38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펄벅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지> 는 작가 자신의 견문을 토대로 하여 빈농으로 재산을 모아 대지주가 되는 왕룽(王龍)과 그 일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그린 소설이다. 격동하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작가를 사로잡은 것은 급변하는 역사의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의 광활한 대지에서 태어나 살고, 죽어가는 질긴 잡초와도 같은 중국 농민의 모습이었다.

작품 전체를 통하여 이야기의 내용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이 거침없이 흐르며, 흔들리지 않는 중국 민중의 강인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어 낮을 밤으로 바꾸는 메뚜기떼, 이 장면을 읽으면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정복했다고 큰 소리쳐도 자연에 비하면 인간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하여 자연과 싸워나가는 모습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사실상 어떤 문화와 그 문화권의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그 나라, 그 민족의 언어를 미묘한 느낌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생활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만일 작가 펄벅에게 중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없었다면 중국과 중국인의 삶을 그토록 풍부하고 진실하게 묘사한 소설 <대지> 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펄 벅은 반평생을 중국에서 살았다. 푸른 눈과 오똑한 콧날을 가졌지만 중국을 사랑했다. 그녀는 임종 직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묘비에 ‘사이전주(賽珍珠)’라는 중국식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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