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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권의 줌인] 평화의 소녀상, 두번 울지 않는다

“행사가 취소 되었나요?” “아니요 취소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아무리 블랙번 공원을 둘러 보아도 소녀상 제막식 행사장을 찾을 수가 없어서 물어 본 답변이었다. 굵은 빗속에서 다시 공원 구석 구석 두 세 바퀴를 돌고 난 뒤 다시 언론사로 전화해서 재차 확인해 보았다. 정확한 주소를 받아 다시 찾은 소녀상 제막식장은 디캡 카운티에서 운영되는 노인아파트 옆 작은 공간이었다. ‘블랙번 2’라는 이 공원은 노인 아파트와 타운 하우스에서 관리하는 작은 공용 정원같은 곳이었다. 왠지 외롭게 이국땅 어느 귀퉁이에 홀로 남겨진, 두번째 버려진 할머니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잔디밭은 진흙과 빗물로 뒤범벅이 되어서 두 발이 푹푹 빠져 쉽게 나오지 못했다. 어기적 걸음으로 겨우 나아간 그 노인 아파트 정원에 놓인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소녀상을 마주 했을 때 첫 눈에 들어온 소녀상 옆의 흰 사인은 ‘성매매가 전국 최고인 수치스런 애틀랜타 통계에 이 소녀상의 상징처럼 성매매가 근절되기를 바란다’ 는 짦은 영어가 눈에 띄었다. “아니 일본의 잔학했던 2차대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한 마디도 없네” 행사에 사용되었던 천막을 거두어 가려고 온 사람들 중 앤토니(Anthony)라는 청년이 내 말을 듣고 그 흰 사인을 자세히 읽더니 “애틀랜타에는 거금으로 성매매가 거래되니 주의를 요한다는 내용이네, 거금으로 몸을 파는 행위가 전국 최고라는 말이지”라고 강조한다. 난 그에게 “이 소녀상은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야. 이 소녀상은 일본이 2차세계 대전 당시 한국을 침략해서 36년간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남자들은 징용되어 일본의 전쟁야욕을 위해 몸을 바쳐야 했고, 여성들은 전장에 끌려나가 일본군인들을 위해 성 노예처럼 위안부 역할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요된 되었지”라고 설명해 주었다.

앤토니는 어리둥절한 표현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바닥의 검은 돌을 보더니 비에 젖어 잘 보이지 않은 검은 돌에 새겨진 아주 작은 검은 글자를 손으로 재빠르게 그러나 정성껏 물기를 닦아가면서 읽어 내려간다. 정성껏 읽고 난 뒤에 “여기에는 너가 설명한 역사적인 부분이 조금 적혀 있네, 충분한 설명은 없지만 그래도 흰 사인보다는 낫다. 너가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전혀 모르고 단순 성매매로만 생각했겠지. 고마워”라고 답했다. 일본의 침략과 아시아에서 일어난 2차대전 상황에 대해 다시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더니 “아니 그렇게 깊은 역사적 이야기가 이 소녀상에 얽혀 있다니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겠네, 이소녀상 표지만으론” 하면서 어두운 얼굴로 말 끝을 흐린다. 그는 아직 젊지만 그의 선조들이 흑인으로서 당한 과거의 제도적 희생을 회상하는 듯 했다.

저녁에 영어판 지역신문에 소녀상 제막식에 대해서 기사가 나왔다. 영어기사 밑에 쓰여진 댓글은 가관이었다. 일본 영사가 발언한 ‘위안부가 자발적 창녀’라는 망언도 놀랍지만 영어기사 밑에 씌여진 잘 훈련된 일본인들의 댓글들은 너무나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해박한 지식과 우리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면 설득력 있게 반박하기 어려운 글들이었다. 더구나 한국인이 아닌 서양인들이 보면 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길게 적은 댓글을 거의 믿게 될 것 같았다. 젊은이들은 영어는 잘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어른들은 한국의 역사 그리고 문화를 잘 알지만 영어 댓글을 반박할 만큼 영어가 유창하지 않고 또 대부분 일상생활에 얽매이다 보니 일본에 맞서 반박할 열정이나 시간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인들의 치밀하고 논리 정연한 그들의 변명, 역사왜곡은 계속된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우리세대와 다음 세대들의 먼 여정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저녁에 미국인 남편도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서인지 “그 소녀상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라며?” 라고 하면서 일본의 망언을 언론이 보도한 사실을 보고 한 마디 한다. 난 흥분해서 “일본의 일방적 역사 왜곡이야. 그들이 스스로 그들의 잔학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지, 그들은 우리 나라를 36년간 침략 강탈해서 괴롭혔지. 난 어릴 때 천인 공노할 일본의 잔학한 행위를 직접 듣고 자랐어” “아 그래? 36년이나?” 그 때서야 남편도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면서 “사실 내가 어렸을 때 옆집에 할아버지가 사셨는데, 2차대전에 참전하셨어.그는 처참했던 전쟁 탓에 일본을 무척이나 미워했단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인들은 그런 할아버지의 목격담보다 일단 경제적으로 잘 살고 보자고 생각했고 일본과 경제거래를 우선으로 두었단다. 그리고 2차대전에 참전한 분들이 돌아가신 후에는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일본의 만행을 잊어 버리거나 잘 모르고 있지.”

남편의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와 다음세대가 역사를 바로 잡기위해 열정을 가지고 좀 더 깊이있게 역사를 탐구해야 할 것 같다. 민간인들로 구성된 몇몇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함께한 블랙번의 소녀상 제막 과정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일본의 2차대전 잔학사의 진실을 알리는 데 정부와 기업도 같이 노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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