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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모래알을 품은 조개처럼


사람에게 과거나 미래를 통제하는 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미련하게도 사람은 과거에 경험했던 즐거움을 추억하며 부족한 현재를 탓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 누려야 할 시간을 허비하며 산다.

가끔 혼자 사는 노인들의 상담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앞으로 자신이 건강을 잃게 되면 의탁해야 할 곳을 미리 알아보고 싶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 나이나 환경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잘 살다가 십 년 후에 다시 전화하시라는 대답으로 내 쪽에서 끝낸다. 그러나 외로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내용의 전화를 받게 되면 상대방이 말을 끝낼 때까지 참고 들으며 기다린다.

얼마 전 혼자 사는 칠십 대 할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뿐만이 아니라 넉넉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남이 보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는 듯 했지만, 삼 년 전 남편을 잃은 후,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가 없어졌다는 생각으로 외부와 단절하고 살았다. 생각은 오로지 남편과 함께 누리던 찬란했던 과거에 고정되어 있었고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향한 비참함과 우울뿐이라는 이야기였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한탄하며 사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살다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 생긴다. 믿었던 사람이 차갑게 등을 돌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 몸속에서 발견되고,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하고, 때론 빈털터리가 되기도 한다. 가슴 속은 타버리고 남는 것은 시커먼 숯덩이처럼 왼통 절망뿐이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그런 역경을 견디고 나면 사람은 더욱 강해진다.



TV 드라마에서 사랑 없는 정략 결혼한 부부가 싸우는 장면을 보았었다. “나하고 이혼을 하면 네 인생에 남는 게 뭐가 있겠냐.”라고 큰소리치는 남편에게 아내가 했던 대사가 있었다. “괜찮아, 그래도 나는 남잖아.” 그렇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다. 그러나 무언가 잃은 아픔을 받아들이고 역경을 견뎌내지 못하고서는 자신을 지켜낼 수는 없다.

진주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여성이 선호하는 보석이다. 은빛을 품고 있는 진주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그러나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광물이 아니다. 모래알이 살아있는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가야 만들어진다. 모래알이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조개는 고통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두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모래알에 반응하지 않는 조개는 결국 병들어 죽고 모래알의 도전을 받아들인 조개는 진주층(nacre)라는 분비물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 물질이 모래알을 감싸면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진주가 된다고 한다.

조개는 실로 오랜 세월 고통을 견디어낸 후에 진주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진주를 기다림의 보석이라고 하기도 하고 인어의 눈물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우리네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사는 동안 절망이나 슬픔을 겪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으리. 이 순간 나의 행동이 과거나 다가오는 미래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 내게 닥친 시련을 이겨내는 일은 자신을 지켜는 일이다.

왜 굳이 슬픔을 피하려고 하는가. 지금도 슬픔 때문에 눈물이 나고 고통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다면 그것은 삶을 사랑한다는 증거다. 모래알을 품은 조개만이 은빛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 낼 수 있듯이, 세상 사는 동안 내게 닥친 역경을 마주할 수 있다면 내가 품었던 고통의 크기만큼 내 인생의 노년에서 아름다운 진주를 얻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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