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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홋카이도의 사계절


일본 여행의 첫 일정을 ‘친구 찾아 삼만리’로 앨라배마에 오래 살다가 고향으로 귀국한 85세 지인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녀의 고향은 홋카이도 섬에서 두번째 큰 도시인 아사히카와다. 도쿄에서 기차로 갈까? 했지만 두 번 갈아타고 10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라 그냥 하네다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했다. 짧은 한국방문을 마치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버스로 하네다 공항으로 옮겨서 비행기를 탔다. 도착해서 터미널을 나서니 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반가워 껴안는데 그녀 옆 기둥에 붙어있던 ‘어서 오십시오’ 한글 사인도 환영해줬다.
산등성이들이 포근하게 둘러싼 분지에 형성된 아사히카와는 대도시의 번잡함 없이 소도시의 매력으로 아담했고 더욱 수원시와 자매도시로 정겨웠다. 고층건물의 2층에 있는 콘도인 지인의 보금자리는 추상화와 도자기가 어울린 작은 미술관이다. 앨라배마에서 익숙하게 봤던 살림에 그곳에서 장만한 소파와 식탁이 품위를 보탰다. 친정가족들이 가까이 사니 노후가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그녀의 환경을 직접 본 우리 부부는 마음이 푸근했다.
특수학교 교사인 그녀의 조카가 휴가를 내어서 우리에게 홋카이도를 안내했다. 우리는 유명한 동물원보다 야외를 선호해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비에이로 향했다. 화려한 단풍으로 불타던 시골길을 지나다 길가에 있는 무인가게에 멈췄다. 수수한 농촌의 정경과 묘하게 생긴 감자와 늙은 호박에 그려진 귀여운 만화에 웃음이 나왔다. 역시 망가의 나라다. 구비구비 들길을 돌아 찾아간 ‘블루 폰드’는 완전 매혹이었다. 물속에 우뚝 선 죽은 나무들의 초연한 그림자를 삼킨 호숫물의 강렬한 푸른빛은 자연의 신비로움이다.
천연의 호수를 보고 들린 곳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시키사이 노오카 화원’이다. 광대하고 부드러운 언덕에 전성기의 향연을 마친 형형색색 꽃들은 다가오는 겨울에 숨을 죽였다. 패치워크로드에 늘어선 빛바랜 꽃들과 단풍들의 조화를 마치 구부정한 늙은이들의 행렬인양 착각하다가 해바라기 들판에 들어서니 태양은 아직도 눈에 부셨다. 그리고 들린 곳은 작년에 작고한 일본 미술계의 거장 고토 스미오의 미술관이다. 생전에 그가 사랑했던 홋카이도에 설립한 미술관에 전시된 험준한 산야나 세상 곳곳을 묘사한 대작들에 나는 제압당했다. 독특한 일본 전통기법으로 눈부시게 다가온 자연에 감탄하다 설악산과 민속촌도 새롭게 만났다. 그는 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보통 10-20년 고심했고 또한 한꺼번에 여러 작품을 제작한 대단한 열정가다.
태풍으로 도쿄에 폭우가 쏟아진 날 홋카이도에는 눈이 내렸다. 호텔에서 빌려준 우산을 들고 지인의 집으로 향하며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탐스런 눈송이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날 눈과 추위를 피해 이중창으로 단단히 보호된 그녀의 콘도에서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없는 구수한 옛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 하얀 눈밭을 따라 휘어진 후라노의 시골길을 다니며 눈덮인 산과 맑은 공간에 가슴을 활짝 열었다. 천상의 음악으로 채워졌다는 뮤직박스 뮤지움을 보며 귀를 즐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호빵맨인 앙팡맨 전시장에서 마음을 즐긴 후 유리 공예 상점을 찾아가 눈을 즐겼다. 요정의 숲인 ‘닝구르 테라스’ 숲속에는 화려한 단풍에 물든 환상의 세계가 있었다. 나무다리로 연결된 작은 통나무 집마다 자연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로 만든 독특한 수공예품들이 요정의 손맛을 보여줬다. 그리고 치즈 공방에서 후라노산 우유로 만든 치즈를 맛보고 포도주 양조장을 들러 시음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소바집을 찾아가서 화톳불 주위로 둘러앉은 우리에게 주인은 사람의 멋을 보여줬다. 타누키 동상의 볼록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고 나서 남편의 배를 톡톡 치며 “닮았다” 해서 피곤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맛있게 먹고 감사했더니 이번에는 자신이 죽기 전에 꼭 다시 찾아오라 당부해서 그러마고 약속했다. 홋카이도의 중부에 있는 아사히카와, 후라노와 비에이를 다니면서 푸른 들판과 자작나무 우거진 숲과 화사한 단풍, 하얀 눈을 즐겼고 원주민인 아이누족 문화관과 ‘빙점’의 작가인 미우라 아야코의 기념문학관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홋카이도를 처음 방문한 우리의 4박5일은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채워졌다. 특히 사계절을 모두 맛보고 좋아하니 지인이 말했다. “당신들은 좋은 사람들이라 축복을 받았어.” 폭설과 혹한의 땅이라 여겼던 홋카이도에 가졌던 기존 관념이 와르르 무너졌고 그 자리에 산과 들판과 아기자기한 명소들의 상큼한 인상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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