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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실한 열매를 꿈꾸며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정신심리클리닉 원장
정평수

저녁 밥상에 도토리묵이 올라왔다.
채소와 고명을 얹어 양념장을 뿌려 놓은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묵은 나의 반대편에 놓여 있어 젓가락이 닿지 않았다. 아들에게 옮겨 달라 하여 맛을 보게 되었다. 결혼 초에는 내 앞에 놓여 있던 맛있는 음식들이 어느 순간부터인지 차츰 아이들 쪽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 같았다. 하기 사 나도 맛있는 걸 보면 아이들이 생각나 먼저 챙겨 주고 싶다. 자식 낳아 길러보니 그게 부모 마음인가 싶다. 오죽하면 어른들이 자식 입에 밥 들어 가는 것과 내 논에 물들어 가는 것이 제일 좋다 했을까. 그걸 모르는 게 아닌데 가끔은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겠지 생각하니 욱하고 튀어나올 뻔 했던 속마음이 꿀떡 삼켜졌다.

일주일 전 쯤 되었을까?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건물 어귀를 빠져나오는데,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차량통행이 잦은 도로의 가로수 밑에서 도토리를 줍고 계셨다. 비닐봉지를 들고 줍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던 길을 돌아 차를 세우고 할머니께 다가갔다. “할머니, 도토리 주우세요?”하니 움찔 놀라시며 “도토리를 주우면 안 되나요?” 하셨다. “아이고 참 할머니도, 같이 주우려고 온 거예요.”하고 안심을 시켜 드렸다.

할머니는 지나다 보니 도토리가 많아 줍던 중이라 하였다. 할머니와 도토리를 함께 줍다보니 어쩌면 이분은 먹기 위해 줍는다기 보다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와 도토리 줍던 추억을 더듬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신호대기 중인 사람들은 가로수 밑에서 무언가 줍고 있는 낯선 풍경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의 시선에 무뎌진 탓인지 이국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도토리를 주우며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한참 줍고 나서 “할머니 저쪽에는 토실토실한 도토리가 더 많아요. 그쪽으로 가시죠” 하며 큰 도토리나무들이 있는 건물 앞으로 안내했다. 큰 나무 밑에는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이 도토리는 먹지 못하는 거라며 길쭉하고 조그마한 것들을 다시 줍기 시작하셨다. 크고 토실토실한 데 먹지 못한다고 하니 괜스레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 들었다.

궁금하여 도토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도토리 종류가 열리는 나무를 통틀어 참나무라고 한다. 도토리나무 종류는 6가지가 있다. 첫번째로는 상수리나무를 들 수 있는데 옛날에는 마을 근처에 많이 심어 구황식물로 사용하였으며,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굴참나무는 껍질을 코르크 마개나 지붕 이음새로 쓰고, 신갈나무는 짚신 안에 깔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떡갈나무는 잎으로 떡을 싸서 보관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뚜껑에 달린 털이 방부작용을 한다. 갈참나무는 늦가을까지 도토리를 달고 있어 갈참이라 불렀고, 졸참나무는 잎과 도토리가 가장 작아서 졸참이라 부른다.



참나무 그림을 비교해 보니 건물 앞에 서 있던 나무는 두 종류였는데 내가 상수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신갈나무로 잎이 넓고 열매는 굵고 둥근 편이다. 그리고 도토리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은 졸참나무였는데, 잎이 작고 열매가 가늘고 길다. 특히 도토리중 맛이 제일 좋아 묵을 쑤는 용도로 사용한다. 결론적으로 할머니의 도토리 구별법은 간단했다. 작고 긴 도토리는 먹는 것, 크고 둥근 도토리는 못 먹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도토리는 쌀이 한국에 전해지기 전까지 중요한 식량 원이었다고 한다.

늦가을이 되니 아름드리 참나무로 둘러쌓인 그 건물 주위에 갈색 낙엽과 도토리들이 수북이 쌓여있어 가을 정취를 더해 준다. 출퇴근할 때마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시간의 빠름을 실감하곤 한다.

스산한 겨울 바람이 속살을 스치고 지나갈 때 도토리를 밟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낭만과 슬픔의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잔디 위에 떨어진 낙엽은 바람에 이리저리 힘없이 날아다녔다. 원가지에서 떨어져 겨우내 뒹굴던 도토리는 봄이 되면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운다. 도토리의 삶이 부모를 멀리 떠나 이국땅에 떨어져 자식을 낳고 살기 위해 이리저리 종종걸음을 치며 치이는 내 삶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에 젖어 나지막한 물구덩이에 처박힌 더럽고 볼품없는 도토리처럼 혹여 누군가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어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떨어진 낙엽과 도토리는 청소하는 사람에게 여간 골칫덩어리가 아니다. 봄이 되면 도토리는 잔디밭과 정원에 굴러들어 떼로 싹을 틔운다. 그러면 일손을 사서 어린 새싹들을 올라올 때 뽑아야지, 땅에 뿌리를 내린 다음 뽑으려면 힘들다.
건물 지붕에 수북이 쌓인 낙엽과 도토리를 제거하는 데도 일손이 필요하다. 깨끗이 제거하지 않으면 바람 때문에 한곳에 몰려 수북이 쌓이게 되는데 그러다 비라도 내리면 썩어서 지붕을 습하게도 하고 그 때문에 물이 고여 종종 새기도 한다. 또한, 배수구를 막아 물이 평면 지붕에 머물게 되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니 자주 치워 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울타리 사이로 굴러든 도토리는 싹을 틔워 나중에 자라서 튼튼한 버팀목이 된다. 살아남은 도토리처럼 척박한 이국땅에서 몸부림치며 살다 보니 내 인생도 어느덧 늦가을 어디쯤 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가족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나는 그들에게 맛있는 도토리가 되어 주지 못하고 퍼글 퍼글하고 떫은 도토리가 된 건 아닌가 반성해 본다. 곱게 빻아 묵을 쑤면 부드럽고 쌉쌀한 맛이 입맛을 돋워 주는 졸참나무 도토리처럼 내 삶도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유용하게 쓰임 받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연말이 되어도 늦가을 날씨 같던 달라스 날씨가 새해가 되면서 본연의 모습을 찾아 가는 것 같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좋다. 눈도 좀 오고, 날도 춥고해야 자연의 질서가 유지 되는 거 아닐까? 일년 내내 파리가 날아 다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정유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좀 더 열심히 살아서 알차고 실한 열매를 맺게 되었으면 좋겠다. 꼭 필요한 곳에 싹을 틔우고 유익한 존재가 되리라 다짐해본다. 커피 한잔을 들고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나뭇잎들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시간이 흐르면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순이 돋아 나겠지. 모든 사람의 소망도 푸르고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정신심리클리닉 원장
정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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