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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문학마당]아들을 장가보내며

아들을 장가보내며, 삼십 년의 애인이라!

“엄마, 그래서 이제부터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사세요.
생각해보면 엄마의 아들, 며느리 괜찮은 애들인데 너무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 보니 그럴 거예요. 돈은 엄마 수중에 좀 있어야 힘이 되니까 돌아가실 때까지 꼭 가지고 계시다가 물려 주시구요,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열심히 성경을 읽으면서 한 일주일쯤 아프다가 돌아가시게 하여 달라고 기도 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그래도 우리 엄마는 행복하지! 누가 요즘에 시부모님 모시나요? 더구나 이민 생활인데. 나랑 누구누구랑 더 신경을 써 드릴 테니까......”

아들 결혼식 전 날 오후에 리허설을 몇 시간 앞두고 사우나에 갔다.
무더운 달라스 땅에 사우나가 들어섰을 때, 난 생 처음 그 곳에서 때밀이 맛사지란 것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가끔씩 심신이 피곤하다 싶으면 달관된 그 손놀림 끝에서 풀리던 피로를 생각하곤 하였다. 몇 년이 흐르는 동안 기회를 잡지 못 하다가 그 날은 마침 사용 기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입장권 한 장이 손 안에 있고 아이들도 권유하는지라 몸도 마음도 쉴 겸하여 바쁜 날 시간을 내어 본 것이다. “그려, 그려, 알았다.”
정작 하고 싶었던 때밀이 맛사지는 예약 손님들로 인해 포기하고 내가 뜨거운 탕 속에 들어 앉아 아들 결혼식에 관한 절차들을 생각하며 피로를 풀고 있을 때, 뜨듯하게 만든 물을 손아귀 사이로 흘려 늙은 어머니의 여윈 어깨 죽지에 연신 끼얹으며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서 당부 하는 딸과 그렇게 하겠노라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하는 모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더 오고 갔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일부러 귀 기우려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말은 이 글 서두에 나오는 그 정도였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사람은 듣고 싶은 것 만 듣고, 보고 싶은 것 만 보며 살 때가 있다고 말 한다. 같이 늙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 질 수도 있을 법 한데, 산뜻한 기분이 되어 사우나를 나서지 못한 것을 보면 엿들은 대화가 나의 어느 편을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아들의 결혼이 결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에 살고 있는 안사돈과 전화를 통하여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들을 잘 키우셨는데, 장가보내려 하니 서운 하시지요?”
“네, 예? 아닙니다. 이제 아들 빨래와 옷 다림질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데요. 저는 모든 것이 감사 할 뿐입니다.”농담을 약간 섞기는 했어도 그 때 했던 말은 나의 진심인 것이, 주말이면 빨래 바구니 가득이 담아온 옷을 빨고 다림질 하면서 이 아들에게 잘 어울리는 보배 같은 사람 좀 우리 집에 보내 주십사 하고 오랜 세월 마음의 기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혼을 준비하고 결혼에 이르던 너덧 달 동안은 지난 30년간 지켜왔던 내 자녀에 대한 믿음의 자리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 보는 그런 기간이었다. 그것은 가까이에서 혹은 멀리에서 전해오는 진심 어린 축하 말 속 에 배어있는 충언들이 한 몫 하기도 하였다. “요즘 한국에서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아들이 장가를 가서 똑똑하면 나라의 아들, 돈이 많으면 장모의 아들이 되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만 어머니에 아들이랍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양가가 모여 식사 하는 중에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예로 들기는 했지만, 이 이야기에 꼬리를 다는 듯 다양하게 들려오는 경험담들이 무게를 실어 줄수록 설마하니 하면서도 그런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예전에는 들려오지 않았던 소리인데......
세대를 역행할 순 없겠지만, 당신 가까이서 효도하는 딸들 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외며느리를 더 챙기시는 우리엄마와, 여섯 자부를 두신 구순의 우리 시어머님은 못난 아드님들만 두셨단 말인가? 스스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면서도, 행여나 이제까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귀담아 들으려고 하였던 편식에 대한 경종일까 라는 비약도 하여보는 그런 기간이었다.

어찌하든, 일륜지 대사인 아들의 결혼식은 청청하게 맑은 3월의 하늘 아래서 은혜롭고, 아름답고, 덕스럽기를 소망했던 나의 바램 되로 잘 치루어졌다. 웃음을 잃지 말라는 시누이의 심심한 당부가 있었건만 턱시도를 입은 아들의 당당하고도 밝은 모습이 끝내 나를 울게 만들었다. “형님은 복이 참 많으세요, 30년씩이나 그 사랑스러운 애인을 옆에 두고 살 수 있었다니요. 내 애인은 15년 함께하고 떠났는데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늦깎이 결혼으로 얻었던 외아들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음을 빚대어 축하와 격려의 말을 건네던 손아래 동서의 배려가 생각났다. 감사의 눈물인 것이다.
환갑이 다 되도록 한 길만 걷고 있는 지아비를, 지금은 몇 명 안 되는 국보쯤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동서가, 아들을 키우면서 맛보았다는 또 다른 애정에 대상을 애인이라고 칭 할 때 신선한 느낌이 들었었다. 30년의 애인이라! 그래 오늘까지를 감사하자. 나라의 아들이건, 장모의 아들이건, 내 아들이건 그저 건강하고 자랑스럽기만 하여다오.
지금, 아들의 속옷이 가득 담긴 빨래방 드라이기가 뜨겁게 돌고 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며늘아이가 밀린 빨래를 하면서 조근 조근 말을 붙여온다. 조금 있으면 구겨진 옷을 다리미로 펴겠지. 마음 뭉클한 것이, 처음에 안사돈과 나누었던 대화가 나의 진심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그런 순간이기 때문이다.
“저는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서경희 수필가,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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