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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목사칼럼> 이민자가 부르는 동백 아가씨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 바라보다 검게 타 버린 검게 타 버린 / 흑산도 아가씨

남몰래 사랑하던 사람이 서울로 떠나버렸다. 흑산도 아가씨는 "바다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갈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이미자가 부른 <흑산도 아가씨> 다. 우리 어머니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다.

서부에 가면 레드우드 나무들이 많이 있다. 꼿꼿하게 거의 일직선으로 자라는 나무들인데, 크기가 30미터, 50미터 되는 것들도 많다. 100미터가 넘는 것도 있다.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재보려고 10명이 팔을 벌리고 나무를 감싸 안아보았지만 모자랐다. 이 나무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보통 몇 백년 이상 끄떡없이 산다. 500년 1000년 된 나무들도 수두룩하다. 1500년 된 나무도 보았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이 나무들은 밑동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그리고 큰 구멍이 나있다. 어떤 구멍은 20명도 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벼락을 맞아서 나무가 불에 탄 것이다. 그런데도 200년 300년 500년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속이 뻥 뚫리고 시커멓게 탄 나무를 보면서 지나가면서 이렇게 넋두리를 했다고 한다. “너는 목회도 안 하면서 왜 그렇게 속이 시커멓게 탔냐?”



우리도 이런 시련 저런 시련을 겪으면서 이 나무처럼, 흑산도 아가씨처럼, 속이 다 시커멓게 탔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나무처럼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성경에 흑산도 아가씨가 나온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다. 우리처럼 잘 살아보겠다고, 아니 먹고 살기 위해, 모압(지금의 요르단 암만) 땅으로 이민을 갔다. 이민살이 10년만에 남편과 두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속이 시꺼멓게 탔을 것이다.

우리는 속이 썩는다, 속이 상한다, 속이 탄다는 말들을 무심코 하는데, 무서운 말이다. 속이 썩거나 상하거나 타면 어떻게 되겠는가? 죽는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속이 탈 때가 마나 많은가?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철없는 아내 때문에, 무능한 남편 때문에, 속 썩이는 자식들 때문에, 아내의 잔소리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저 나무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캔사스의 한 교회에 집회를 갔었다. 그 교회 목사님이 부흥회를 앞두고 한주간 동안 금식하며 준비를 하자고 설교를 했다. 그러면서 다이어트 하면서 금식하는 것은 금식이 아닙니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에 그 교회에서 제일 오래된 권사님이 그만 시험에 들고 말았다. 마침 그분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금식을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자기 들으라고 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나오지 않고 있었다. 부흥회를 앞두고 이런 일이 있으니 목사님이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목사는 설교할 때 항상 긴장을 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설교 원고를 검토한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시험에 드는 교인이 있을까봐. 정말 별 걸 가지고 다 시험에 드는 것을 보게 된다. 항상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목회를 한다.

아틀란타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회 연합회 모임에서 한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설교를 하시다가 느닷없이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를 부르는 것이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처음에는 분위기 살리려고 부르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2절까지 부르는 것이었다. 노인 목사님이 주책이지...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해져 갔다. 모두가 다 숙연해졌다고 한다. 그 목사님이 왜 그 노래를 부르는지 안 것이다. 목회하면서 이 목사님은 이 동백꽃처럼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던 것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수도 없이 겪었던 것이다. 이 동백꽃처럼 가슴에 피멍이 들었던 것이다.
떠나가는 교인들 때문에... 이런 저런 말 하는 교인들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연 때문에... 외로움에 지쳐서... 힘겹게 살아가는 교인들 바라보면서...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원래 동백 아가씨는 이미자가 아니라 이민자가 부르는 노래다. 이민 와서 사는 우리 이민자들이 부르는 노래다. 이민 와서 사는 사람 쳐놓고 동백꽃처럼 빨갛게 빨갛게 가슴에 피멍이 들어있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는가? 동백꽃처럼 사연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슴에 동백꽃처럼 피멍 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 이민자들 가운데 동백 아가씨 아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목사님들 가운데 동백 아가씨 좋아하지 않는 목사님이 얼마나 될까?

어느 목사님은 마지막 돌아가실 때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왜 목사가 찬송가를 부르지 않고 아리랑을 불렀을까? 믿음이 없어서 그랬을까? 가슴에 맺힌 것이 너무 많아서 평상시에 그 노래를 즐겨 부르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 그 노래가 자신도 모르게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알래스카에 있는 앵커리지는 영적으로 매우 힘든 지역이라고 한다. 서울 모 교회 지교회가 그곳에 있는데, 3년마다 목사가 바뀐다고 한다. 어떤 목사님도 3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목회하는 목사님 이야기다. 그 교회 간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목회가 어려운 것이다. 열심히 잘 하려고 하지만 잘 될 것 같다고 또 안 되고... 이 문제가 터지면 그 문제 막으려 동분서주하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 같으면 다른 문제가 터지고...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을 목회를 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에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거기에 답글이 하나 올라왔다. “목사님 많이 어렵고 힘들지요? 그래도 지금까지 참 잘 해오셨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 헤쳐나가리라 믿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앞으로 더 잘 할께요. 그러면 되지요? 목사님 힘 내세요! 파이팅!” 그 목사님의 아내가 쓴 글이다. 이런 아내가 옆에 있는 한 그 목사님은 교회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교인이 열 명도 안 되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이 있다.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는가? 생활도 어려워 자녀들을 대학에도 못 보냈다. 그런데도 항상 얼굴이 밝다. 어려운 이야기 하는 걸 못 봤다. 교회는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운 친구이다.

아는 분 이야기다. 이민 와서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 보통 남편 잘 못 만나서 고생한다고 아내가 주야로 바가지를 긁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부는 거의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 다른 부부 이야기다. 아내가 잘못해서 가까운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서 거금을 날렸다. 아내는 흑산도 아가씨처럼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동백꽃처럼 새빨갛게 가슴에 피멍이 들었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때마다 일마다 그 일을 들고 나와서 아내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남편이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그 일로 다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은퇴하신 목사님들 몇몇 부부가 섬으로 여름 휴가를 같이 갔다. 다들 작은 교회에서 어렵게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신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은퇴 후에 더 어렵게 지내실 수밖에 없다. 그분들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노숙자 신세를 면했다고 한다. 모처럼만에 만나 목회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서로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한 목사님이 갑자기 일어나서는 아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큰 절을 했다. “여보, 미안해. 못난 남편 만나서 평생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오.” 그러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고 한다.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가슴이 짠했다.

아내가 결혼할 때는 동백꽃 같이 아름다웠는데, 못난 남편 때문에 지금은 동백꽃처럼 속에 붉게 피멍이 들어있다. 남편 따라서 목회 한다고 흑산도 아가씨처럼 가슴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그러면서도 레드우드 나무들처럼 꿋꿋하게 잘 견뎌주고 있는 아내가 고맙다. 나도 언젠가는 아내에게 큰 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진희 목사(웨슬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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