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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꽃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 주고 떠나기가 아쉬웠는지 달라스를 온통 하얀 얼음으로 덮어 버렸다.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 주고 떠나기가 아쉬웠는지 달라스를 온통 하얀 얼음으로 덮어 버렸다.

휴교라는 소식에 좋아라 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하루의 반을 전화기를 붙들고 학원생들의 수업 시간을 조절하느라 씨름을 해야 했다.

며칠 전부터 시작한 감기는 끝내 자지러질듯한 기침으로 변해서 나를 힘들게 했다. ‘하루 정도 땀을 푹 내고 누워있으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급기야 한 번 기침이 시작되면 옆구리까지 저릴 정도로 심해졌다. 이대로 떠날 수는 없다며 온 힘을 다해 내게 대적하는 겨울에게 결국 난 항복을 하고 말았다.

지난 며칠 동안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해서 올 겨울은 큰 추위 없이 지나가려나 보다 내심 아쉬워하던 차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꽁꽁 얼어 버렸다. 세상은 동장군의 마지막 기세에 백기를 든 모습으로 햇살에 빛나는데 그 빛깔이 너무 고와서 뒤꼍으로 나가 손으로 쓸어보았다. 스케이트장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어 버린 바닥은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얼음 꽃들 사이로 비치는 보랏빛을 보게 되었다. 바로 어제까지 ‘겨울이 뭐라고’ 하며 활짝 피어있던 보라색 팬지 꽃이었다. 밤새 내린 얼음 섞인 눈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색을 간직한 채 하얀 얼음 속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딸 아이와 정성껏 심었던 꽃이 그래도 겨울을 잘 넘기고 있구나 싶었는데 이내 얼어버린 모습을 보자니 안쓰러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난 여름, 집 앞 화단에 꽃을 가꾸고 싶다는 딸 아이의 성화에 갖가지 꽃들을 가득 심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과 거름을 주며 관리하던 얼마 후 꽃나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벌들까지 모여 들었다. 그러나 가을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꽃나무들을 다 뽑아내야만 했다. 집 처마끝에 가득 생긴 벌집들 때문이었다. 꽃을 찾아 든 벌들은 가까운 처마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급기야 현관 입구 처마와 큰 창문 사이까지 벌집을 짓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제 막 움집을 튼 벌집들을 긴 장대로 털어내고 약품을 뿌리기도 해 보았지만 나중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집 터가 되어 버렸다. 할 수 없이 비가 온 다음날을 택해 꽃을 다 뽑아 내야만 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늦게 귀가한 날에도 밤 늦게 꽃밭에 물을 주며 정성을 다하던 딸 아이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엄마, 이건 어떻게 해?” 울먹이는 딸 아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직 빗물이 고여있는 노란 꽃 한 송이에 벌 한 마리가 날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빗물에 젖은 날개 때문이려니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꽃송이를 튕기자 이내 옆으로 날아 오르다 다시 그 꽃으로 주저 앉았다. 그러기를 몇 번, 꽃에서 떨어지지 않는 벌과 함께 그대로 쓰레기 봉투에 집어 넣었다.
모든 꽃나무를 파낸 후 나머지 꽃나무들을 봉지에 담으려다 가슴 뭉클해서 일손을 멈춰야만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났건만 새까만 봉투 안에서도 여전히 그 꽃 가장 자리에 앉아 있는 벌 한 마리….

헤어지기 싫은 아쉬움 때문인지, 아님 아직도 자신의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해 꿀물을 빨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같은 생태계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깊은 관계가 어쩌면 인간 세상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할 수 없는 사랑’처럼 애닯아 보이는 그들의 관계를 그냥 무시할 수 없어 난 그 꽃나무를 현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담장 밑에 다시 심기로 했다. 잔뿌리에 겨우 묻어 있는 한줌도 안 되는 흙이 혹여 떨어질 새라 조심스럽게 두 손 위에 얹자 딸 아이는 금새 눈치를 채고 호미로 땅을 파고 거름을 뿌려 주었다.

그렇게 옮겨 심은 한 포기 꽃은 이번 겨울이 시작될 때까지 노란색을 내보이며 우리들 마음을 밝게 만들어 주었다. 찬 바람에 꽃이 완전히 시들어 버리자 그 벌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겨울에 잘 견디는 보라색 펜지를 사다 담장 밑에 심을 때도 꽃대가 갈색으로 시들고 볼품이 없어졌지만 차마 뿌리 채 뽑질 못하고 위만 베어 내었다. 봄이 되면 찾아올 그 벌을 생각하니 파낼 수가 없었다.

지난밤 내린 얼음 눈에 굳게 얼어버린 꽃들 사이로 고운 자태를 내보이고 있는 보라색 펜지, 만지면 그대로 부러질 것 같아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 스케치 북을 들고 나와 그 고운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아보았다.

햇살에 얼음 꽃이 녹고 나면 펜지도 사라질 것만 같은 안타까움에 떠나 보내고 싶지 않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이 얼음 꽃과 함께 보랏빛 펜지를 주제로 캔버스 위에 이 겨울의 마지막을 색칠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운 사랑을 노래하듯 말이다.


문정(드림아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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