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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떨어진 꽃들을 기억하며

지난 주 친구들과 함께 영화 ‘귀향’ 을 보았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홍보된 영화에 대한 정보를 대략 알고 간지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이 영화는 일제 강점기에 열 네 다섯 살 된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겪어야 했던 처절한 상황을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내 편이 하나도 없는 세상, 자신만을 소중히 여기는 어른들 사이에서 살려고, 살아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려고 죽을 힘을 다해 견뎌냈을 어린 소녀들을 보며 가슴이 저렸다.

귀향은 나라를 잃은 설움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인간의 소중함을 잃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인이 아닌 조선의 소녀들에게는 먹고 쉬거나 가족과 함께 살거나 목숨을 유지할 권리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린 소녀들은 총, 칼을 지닌 권력자들에게 일회용 물품 취급을 받다가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마치 입맛에 맞는 과일을 따서 우걱우걱 씹어먹다 싫증이 나면 아무 미련 없이 길에 던져 버리듯 말이다. 절망속에서 쏟아내는 그녀들의 마지막 절규조차도 이 땅의 역사와 권력자들의 기억 속에서 남김없이 사라져갔다.

텅 빈 밥상머리에서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삼키며 잡혀간 딸자식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부모들. 세월이 흘러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소녀의 부모는 자식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의 못남을 자책하며 먼저 간 딸을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이제 모두 떠나버려 말이 없는 부모들, 그 깊은 회한에 눈이나 감고 죽을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처럼 혼이라도 돌아와, 말라 비틀어지고 구멍 숭숭 뚫렸을 부모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기를 바래본다.



“밥 묵으라” 귀향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죽어서 혼이 되어 돌아온 딸에게 역시 혼이 되어버린 부모가 밥을 차려 주며 하는 말이다.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따뜻한 한마디다. 밥상을 차려 준다는 것은 돌보아 주는 것이다. 권력을 가졌던 자와 나라로부터 버림받았던 소녀에게는 그래도 그녀를 염려해주는 부모가 있었기에 지울수 없는 아픔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중간 중간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들도 볼 수 있었다. 한창 손주들 재롱을 보며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야할 구순이 되신 어르신들이,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악몽같은 기억 때문에 ‘불타는 소녀들’과 같은 끔찍한 그림을 그리신다. 돌아가시기 전에 치유될 수 있을까!

귀향을 한 뒤에도 예전처럼 다시 지낼 수 없었을 고향에서 얼마나 가슴 아프게 살아오셨을까!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살아왔을 여인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불공평한 시선과 그들의 풀리지 않는 억울함이 혹여 권력자들의 무관심 때문은 아니였을까 싶어 눈물이 났다.

꽃같은 소녀들에게 닥쳤던 억울한 희생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을 위로할 적당한 말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했던 나라의 수장들과 힘 있었던 자들의 만용에 무고한 백성이 희생되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삶을 빼았겼던 사실이 참으로 억울하고 분했을 것이다. 약자이기 때문에 겪었던 소녀들의 아픔, 칠십 여년 전의 끔찍한 희생이 우리 세대에서 잋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들의 희생을 밑거름 삼아 바른 인간관을 세워나가며 따뜻한 사회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아픔을 당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위로와 온정의 손길을 보내는 삶을 살다보면 미래를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오는 내내 이 말 한마디가 맘속에서 맴돌았다.
“밥 묵었나?”

이주은(캐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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