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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리도록 아름다운...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나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버릇이 한 가지 있다. 약속시간에 5분이나 10분씩 늦는 것이다. 그렇다고 초면에 늦는 실례는 하지 않는다. 지능적으로 조금씩 나와 친해졌거나 익숙하다고 생각되면 마음이 느긋해져서 늑장을 부리는 고질적 습관이 튀어 나온다. 그래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면 언제나 밥값은 내차지다. ‘시간이 금인데, 너 요즘 금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지? 늦었으니까 오늘은 니가 밥 사라.’ 라며 나의 신용카드에게 꼼짝없이 지갑 밖의 세상을 구경하게 해준다.
그런 내가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바지런을 떠는 때는 셋이나 되는 아이들의 등교를 준비하는 아침시간이다. 학창시절 수 없이 했던 지각을 자식들에게 만은 대물림하기 싫은 건지 아님 바른 엄마라는 소릴 아이들에게 듣고 싶은 건지 아이들의 학교만큼은 늦지 않게 꼭꼭 데려다 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나의 고질적인 버릇인 지각을 깨끗하게 고친 것으로 오해 할 수 있겠지만 40년 넘게 몸에 배어온 습관을 고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일요일, 교회를 갈 때 나의 버릇이 유독 튀어나와 빛을 발한다.

신앙의 깊이를 누가 알까마는 스스로 날라리 신자라고 자신하는 나는 교회에 일찍 가서 박수를 치며 찬송을 하거나 소리 내어 통성기도를 하는 것 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중얼 묵도를 하는 일이 어김없이 어색하다. 그리고 목사님의 이목구비가 선명히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 하는 것을 들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 부담스러움을 피하고자 내 오랜 습관을 핑계 삼아 일부러 꾸물대며 예배가 시작된 5분 늦게 들어가서 구석진 곳이나 맨 끝에 비어있는 자리에 잽싸게 앉곤 한다. 이따금 뒷자리에 자리가 없어서 맨 앞으로 가야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지만

맨 뒷자리에 앉는다고 해서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멀리서 보이는 웅장한 십자가는 마음을 더 경건하게 하고 흐릿하게 보이는 목사님의 얼굴은 실물보다 훨씬 잘생겨 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머리 스타일,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간혹 지루한 설교를 피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저 올림머리 핀은 어디서 샀을까?’ ‘저 파마 이쁜데, 이름은 뭐지?’ ‘저 남자는 머리를 좀 더 단정히 자르는 게 좋겠어.’ 라는 잡생각을 가지고 아무 뜻 없이 쳐다보던 사람들 틈에서 눈처럼 하얀 남자와 여자의 뒷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한 올 도 없는, 팔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노부부였다. 새까만 뒷모습들 사이에서 유독 하얀 두 사람의 뒷모습은 검은 바둑알에 포위당한 흰 바둑알처럼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심하게 한 주가 흘러 또다시 주말이 되었다. 가족들 모두 집근처 공원으로 저녁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나갔다. 남편은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나는 늘어난 뱃살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공원을 30분 돌고 오기로 했다. 실룩거리는 뱃살을 진정시키며 씩씩하게 걷다가 내 허리춤 정도는 올만큼 커다란 개 두 마리를 끌고 산책을 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굳이 보이는 데로 묘사를 하자면 개를 산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에게 끌려 다니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나와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던 노부부를 만날 때는 혹시나 개가 나에게 뛰어 들어도 기력이 딸려서 제어를 못할까봐 무섭기까지 했다.
눈인사만 건네던 나는 세 바퀴째 정도 돌고 있을 때 길지도 않은 짧은 “Looks nice!”라며 습관적이고 의미 없는 말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보기 좋다는 소린지 개들이 보기 좋다는 소린지 말을 툭 던져놓고 스스로도 헷갈렸다. 미소 한번 지어주고 자나 칠 것 같은 노부부는 숨이 가픈 김에 쉬려는지 아니면 동양 아줌마의 수줍은 인사에 화답을 하려는지 말을 걸어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올해가 자신들의 결혼 50주년 이라며 축하를 해달라는 말을 하면서 할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잔잔하게 떨리는 거죽한 손으로 할머니의 굽은 어깨를 감싸며 울퉁불퉁 주름진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멀어지는 그들의 하얀 머리가 석양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도록 시렸다. 나는 가벼운 인사만을 건넸을 뿐인데 그들이 나에게 되돌려 준 것은 존경과 감사와 따뜻함과 사랑이었다. 나는 바로 걷지 못하고 세월의 속도만큼 느리게 걷는, 그러면서도 세월의 품격만큼 기품 있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뿌옇게 바라보았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세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에서 보다 진한 사랑이 껑충대었다.

돌아온 주일도 여전히 오랜 습관처럼 맨 뒤 구석자리에 앉아서 멀리서 보는 십자가가 더 웅장하다는 스스로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예배를 드렸다. 지난주에는 무심코 보던 백발 노부부의 뒷모습이 눈에 콕 박혔다. 공원에서 미국 노부부를 만난 후 느꼈던 아릿한 감정이 아직도 진정이 안 된 듯 심장이 뜨거워지며 펌프 짓하듯 울컥울컥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이 눈물을 억지로 그쳐보려 해도 심장에서부터 퍼 올려지는 눈물을 그칠 재간이 없었다. 나는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난데없이 그들의 힘겨운 이민자의 삶을 생각했다. 유학생활을 거처 이민자로 살아온 지 10년, 문화와 관습 그리고 언어가 다른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달나라 여행이 관광 상품으로 나온 2016년에도 녹록치가 않다. 하물며 이민 1세대인 그들이 겪었을 삶은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을 힘들고 외로웠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쓰라렸다.

나는 항상 노부부의 하얀 머리를 보면 눈이 시리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들의 세월을 존경하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들의 노년이 나의 미래였으면 한다. 노부부의 소복소복 하얗게 쌓인 세월들은 나에게 종교 이상의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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