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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호더와 스님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조소현

우리에게 물건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에 도착한 2013년 삼월, 내가 소유한 물건은 여행용 큰 사이즈의 캐리어 하나였다. 3년 5개월이 지난 2016년 8월, 나와 남편의 짐은 12피트짜리 트럭을 채웠다. 그 동안 어찌하여 이토록 많은 물건들로 주변을 채우게 되었을까?
남편과 DIY (Do It Yourself) 이사를 하면서 나는 물건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오클라호마의 뜨거운 태양 볕 아래에서 우리들의 짐이 담긴 수십 개의 박스들을 나르고, 콜로라도 덴버에서 그 박스들을 다시 풀면서 내가 얻은 교훈은 이 한가지 질문이었다. 살면서 이 많은 물건들이 정말로 필요할까? 언제 이 많은 물건들을 사 모았나?
우리가 만약 손수 이사를 하지 않고, 포장이사 업체를 통해 간단히 이사과정을 마쳤다면, 지금과 같은 질문 없이 또 다시 우리는 쇼핑을 하는데 큰 지체함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험난한 과정의 결론은 하나였다.
“내게 설레임을 주지 않는 물건은 버리자!”
사실 물건을 사는 행위에 비해 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평소에 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쇼핑을 크게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삼 년 반 동안 늘어난 짐을 보면서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오해 했나 보다.
오클라호마에서 남편과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윈도우) 쇼핑이나 가 볼까?’하는 마음으로 백화점이건 상점이건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시원하게 잘 나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몇 초 만에 반짝이는 새 상품들에 눈이 매혹되고, 지갑이 열리는 것도 시간 문제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무게감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쇼핑의 시간이 지나면 손에는 다시 물건들이 채워져 있다. 마치 마음을 이 물건들로 채우면 뿌듯함, 행복감, ‘뭔가 건진 것 같은’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렇게 쇼핑의 맛을 느끼면서 집안을 물건들로 채워놓은 것이다. 소비하는 삶은 이사라는 큰 일을 두고 하나하나씩 모두 박스에 담겨 거실로 나왔다.


우리는 오클라호마의 900스퀘어 피트짜리 집에서 콜로라도 덴버의 650스퀘어 피트짜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내 과거의 흔적들, 시간의 잔재물인 물건들이 제대로 된 공간을 찾지 못했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수납 공간이 적다. 그렇게 쌓인 물건들을 남편과 나는 과감히 정리하고 버리기로 결심했다.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은 예상하지 못한 심리적 이별의 과정을 하나 하나 거쳐야 했다. 예컨대 사이즈가 작아진 치마. 어느새 부턴가 작아져 버려 더 이상 입지 않게 된 이 천 조각에도 나는 집착을 했다. 남편은 그 치마를 들고 묻는다. “이거 버릴 거야, 아니면 둘 거야?”
마치 이 질문이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처럼 들리기도 했다. 지금 당장 입지 않을 것이고, 어차피 사이즈도 작아서 입기 힘든 것임을 알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멀쩡한 걸 왜 버려?’ ‘살 빼면 입을 수 있어’라는 집착하고픈 마음이 고개를 든다.
그만큼 나는 작은 물건에도 애착이 있었음을 새삼 발견했다. 이별의 과정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사실 물건들이 없어지고 난 빈 공간은 여유와 자유로움이라는 가벼운 느낌을 준다. 물건을 버리면서, 이 자유로움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가끔 시청하는 티비쇼 중에 ‘Buried Alive’: 호더(Hoarder)에 관한 쇼가 있다. 집안에 물건들을 탑처럼 쌓아두고, 도저히 집안에서 이 물건들을 처치하지 못해 집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실내 쓰레기장과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심리 상담을 하면서 집안의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전에는 이 쇼를 보면서 왜 사람들은 저렇게 하고 살까? 라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이번 이사과정을 거치며 나는 내 스스로 물건에 대해 갖게 되는 집착을 발견했다. 이 집착들이 티끌처럼 모여 태산이 되면 호더가 되는 것 아닐까. 호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님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람도 적고, 물건도 없는 고즈넉한 절간에 들어갔을 때 갖게 되는 차분해 지는 마음.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그러한 마음상태가 될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이지 물건들로 그득하여 갑갑함이 느껴지는 곳이 아니다.
어느 새 이사 온지 보름이 지나갔다. ‘정리의 여신’이라 불리는 마리에 콘도의 책을 읽는다. 그녀의 조언대로 내게 설레임을 주는 물건을 남기고 그렇지 않은 물건들과는 이별을 하면서 이미 채워져 버린 과거보다는 흰 도화지 같은 현재를 설레임으로 채워보기 위해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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