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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자녀양육6>위대한 유산

김종환 교수/달라스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 무엇일까? 부모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부모들는 돈이나 부동산이나 주식을 자식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밤낮으로 일을 하기도 한다. 과연 그것이 최고의 유산일까? 나는 내 아들과 딸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줄 것인가?

돌이켜 보면 우리집은 창피하게 가난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했던 삶을 이야기할 때 뭐(?)가 찢어지도록 가난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창피하게 가난한 것과 뭐가 찢어지도록 가난한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마음에 가난한 것이 창피했다. 한번은 몇몇 친구들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던지 나를 미행했다. 누추한 집에서 사는 것을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이 창피해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돌아다니다가 친구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1970년대 초 우리 가족은 사당동 판자촌의 한 판잣집에서 살았다.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세 형제가 나란히 누우면 여유 공간이 별로 없는 그 방이 침실이고 거실이고 공부방이었다. 방문을 열면 부엌이 있었는데 조그만 찬장 하나와 석유 곤로 하나 그리고 화덕 하나가 부엌살림의 전부였다. 연탄 두 장이 들어가고 바닥에 도르레가 달린 화덕을 방 밑으로 밀어넣어 방을 데웠고, 밖으로 끌어내어 그 위에서 음식도 만들고 빨래도 삶았다. 물론 화장실은 동네 한 구석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

부모님의 삶은 정말 고달팠다. 아버지는 아직 깜깜한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도매시장에 가서 채소를 사오셨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아침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난 후,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 쯤 시장으로 나가셨다. 매일 아침 우리 부모님은 무우, 배추, 오이, 가지, 마늘, 고추, 파, 대파, 쪽파, 양파, 부추, 갓, 쑥갓, 우엉, 고구마, 감자, 깻잎, 고춧잎, 두부, 콩나물, 어묵 같은 식재료를 좌판 두 개에 펼쳐놓고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장 보러 오는 주부들에게 파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아침 장사를 위해 시장으로 나가기 전, 늘 세 아들의 머리맡에 무릎꿇고 앉아 기도하셨다.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속삭이는 소리로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이른 아침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면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계속 자는 척하곤 했었다. 때로는 실눈을 뜨고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이 보기도 했다. 어머니가 기도하시던 소리와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기도는 언제나 큰 힘이 됐다. 유학생 시절, 학교나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머니한테 기도를 요청했다. 이민생활이 힘들고 지치게 느껴질 때마다 어머니가 기도하시던 소리와 모습을 생각하며 새로운 힘을 얻었다.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의 기도 소리와 모습을 생각하면 위로를 얻고 격려를 얻고 용기를 얻고 힘을 얻는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면서도 성경을 많이 읽으셨다. 우리 부모님의 노점은 시장의 모퉁이에 있어서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판매대 네 귀퉁이에 막대기를 세우고 두꺼운 비닐을 연결하여 세 면을 둘러막는 벽이 되게 했다. 부모님은 그 안에 조그만 난로를 피워놓고 추운 몸을 녹였다. 손님이 없을 때면 어머니는 앞에 돈주머니를 차고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난로 곁에 앉아서 빨간 색년필로 아래위로 줄을 그으며 성경을 읽으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폐암과 싸우면서도 성경을 읽으며 필사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성경을 필사한 공책을 보며 충격과 도전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항암치료로 인해 고통스럽고 힘이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식탁에 앉아 성경을 마주하셨을 어머니를 상상하는 일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도 아침마다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때로 성경읽기가 귀찮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때는 종종 어머니가 성경 읽는 모습을 떠올리며 귀차니즘을 물리친다.
어머니가 나에게 남겨주신 기도와 성경읽기의 본은 무엇보다 위대한 유산이다. 그 유산은 어떤 재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자산이 되어왔다. 많은 물질보다 귀한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신 어머니가 무한히 감사하다. 어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것과 같은 유산을 나도 내 자녀에게 남겨주어야 할텐데….

솔직히 아들 딸을 위해 기도를 많이 못했고,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편하게 생활하다 보니 마음이 안일해져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고, 큰 어려움 없는 현실 속에서 살다보니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절실함이 없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고, 이민자로서의 삶이 분주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봤자 핑계일 뿐임을 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신 것에 비하면, 나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너무 소홀했다. 그래도, 비록 염치 없지만, 내가 가끔이나마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성경 읽으라고 권면한 적이 별로 많지 않다. 아이들이 내가 성경 읽는 모습을 보며 성경 읽기를 배우기를 바래서 본을 보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모범적으로 성경을 읽어왔다고 자부하기에는 양심에 거리낀다. 좀더 부지런히 노력했었어야 했다. 그래도, 비록 염치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아침 어머니의 유산을 생각하며 내 자식들에게 남겨줄 유산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본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난한 중에도 이렇게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셨는데, 내가 내 아들 딸에게 남겨주는 유산은 너무 초라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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