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문학칼럼> 안녕, 내 강아지!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오늘은 내 강아지 삐삐가 결혼을 하는 날이기도 하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영어 학원을 가는 날이기도 하다.
몸에 물이라도 묻으면 뜨거운 기름이라도 튄 것처럼 이리저리 팔딱이던 삐삐가 웬일인지 얌전히 목욕을 하고 있다. 아마도 고운 새색시가 되는걸 알고 있나 보다.
삐삐의 결혼식 소식을 들은 지난 주말부터 엄마 뒤를 졸졸 쫒아 다니면서 졸라도 봤고, 맛있는 치킨도 일부러 안 먹으며 고집도 부려 봤지만 엄마의 맘을 바꾸지 못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영어도 입에서 살살 녹으면 좋으련만, 버터를 움푹 떠 넣어도, 부드러운 치즈케잌을 먹어도 내 혀는 영어만 보면 뻣뻣해진다. 그러니까 영어 학원을 가는 나의 몸도 뻣뻣해 질 수 밖에. 여느 때와 달리 깨끗하게 목욕을 마친 삐삐는 엄마의 품속을 달려 나와 나에게로 뛰어 들어 왔다.
“멍멍멍!”
“엄마, 들었어? 삐삐도 언니가 꼭 옆에 있어줄거지? 그러잖아.”
나는 어깨를 축 내리고 입을 삐죽이며 눈물이 글썽해진 눈으로 삐삐를 꼬옥 끌어안았다.
삐삐를 닦던 수건을 내려놓으며 엄마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 조금만 더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으면... 조금만 더!’


아직 촉촉이 젖은 삐삐를 더욱 세게 끌어안고 지금보다 100배는 더 불쌍한 눈빛으로 엄마를 보았다. 그때였다.
“애들은 몰라도 돼.”
방에서 바이올린을 들고 나오던 언니의 한마디 때문에 흔들리던 엄마의 눈빛이 이내 침착해 졌다.
‘아유,, 저 웬수!’
난 순간 언니라는 단어의 비슷한 말은 웬수 또는 서경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알 없는 미소를 머금고 삐삐의 결혼을 친절하게 설명하셨다.
“강아지는 2년이 지나면 아기를 낳을 수 있어. 일종의 짝짓기, 교미를 하게 되지.”
“교미?”
“그래, 우린 교미를 결혼식이라고 하자. 인천에 사는 엄마 친구가 삐삐 신랑을 데려오면 우리 집에서 결혼식을 하는 거야. 오늘은 삐삐에게 설레고 좋은날이니 서은이도 맘속으로 응원을 해줘. 알았지?”
“엄마아,, 삐삐 옆에서 응원해줄게.”
나는 삐삐의 결혼식이 궁금했다. 아니 삐삐의 신랑감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알고 싶었다. 엄마의 눈빛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엄마, 서은이 또 꽤 부린다. 야, 학원 안가? 일주일에 두 번 가면서 한번 빠지면 가뜩이나 잘하는 영어가 쑥쑥 늘겠다.”
소파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언니의 한 마디에 엄마의 흔들거리던 눈빛이 냉동실 속 얼음보다 차갑고 딱딱해졌다.
왜 하필이면 오늘일까? 차라리 피아노나 미술 학원을 가는 날이면 엄마에게 나의 애교가 통했을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영어를 싫어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다시 증명 되는 순간이다.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까딱이며 메롱이라도 하듯 씩 웃는 언니를 향해 나는 괜히 소리를 질렀다.
“내 아이스크림 먹지마. 먹으면 죽어!”
내 으름장에도 콧방귀도 안 뀌고 발을 계속 까딱이는 웬수, 언니 그리고 서경이다.

‘신랑감이 못생겼으면 어떡하지?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나? 주례는 누가 보는 걸까? 참,, 우리 삐삐 예쁘게 면사포라도 씌워줄걸,,, 작년 할로윈때 샀던 게 내 방 서랍장에 있는데...’
원어민 아이작 선생님께서 생글거리며 쏟아내는 수많은 영어 단어만큼 내 머릿속에도 수많은 상상이 쏟아지고 있었다.
“굿바이 씨유 넥스트 타임!”
아이작 선생님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1층에서 멈춰있는 엘리베이터를 확인 하자마자 나의 몸은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척척 알아서 계단을 향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아이작 선생님의 꼬불거리는 발음을 흉내 내는 놀이도, 학원 옆 슈퍼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도, 여기저기를 빙빙 둘러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멈추는 노란 영어 학원 버스도 타지 않고 삐삐의 결혼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를 바라며 뛰고 또 뛰었다.
“멍멍멍......”
현관문을 열자마자 삐삐가 으르렁 거렸다.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강아지를 달래듯 안아 올린 사람은 처음 보는 아줌마였다.
“어머,,, 서은이 많이 컸구나? 갈수록 엄마 얼굴 나온다?”
아줌마가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건네는 사이에도 품에 안긴 강아지는 나를 보며 으르렁 댔다. 찬찬히 보니 삐삐랑 똑 같이 생긴 저 강아지는 삐삐가 아니다.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줌마의 품에서도 연신 으르렁 대는 강아지를 나는 일부러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감히 삐삐의 언니인 나를 보고 으르렁 대는 저런 못된 강아지가 우리 예쁜 삐삐의 신랑이라니……. 나는 괜실히 화가 나서 삐삐의 신랑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일부러 험악하게 으르렁 거려 보았다.

삐삐의 결혼식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났다. 나와 마찬가지로 철이 없이 짤랑거리던 삐삐는 임신을 하고 나서 많이 변했다. 나에게 먼저 달려들어 장난을 치자고 까부는 철없는 강아지가 아닌 듬직한 예비 엄마처럼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모양새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배가 불룩 튀어 나오고 젖꼭지도 많이 커져서 내 새끼손가락 만해졌다. 임신 초기에 엄청 먹어대던 식성도 차츰 줄어들어 지금은 좋아하던 마늘빵을 줘도 시큰둥한 표정이다.
숨을 헉헉대며 축 늘어져 있는 삐삐가 안쓰럽고 또 대견하기도 해서 목덜미를 살살 긁어 주고 등을 토닥거려주면 내 손길마저 귀찮은 듯 무거운 배를 끌고 집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럴때면 쪼그만게 결혼했다고, 아기를 가졌다고 하늘같은 이 언닐 무시하는 거 같아서 안쓰러움이 얄미움으로 확 바뀐다.
“엄마,, 삐삐 왜 저래? 임신하면 즐거운 거 아냐? 곧 예쁜 아가들도 만날 텐데. 저렇게 기분이 안 좋으면 어떡해? 새끼 강아지 낳기만 해봐,,, 머리 한 대 콩 쥐어박아 줄 테니까.”
“안 그래도 오늘 낳으러 갈거야.”
“오늘?”
영어책을 학원 가방에 넣다가 하마터면 발등으로 떨어뜨릴 뻔 했다.
“그래,, 강아지는 보통 60일에서 65일 정도면 출산하는데, 삐삐가 오늘이 65일째야. 어쩌면 수의사 선생님께서 제왕절개를 권할지도 몰라.”
“엄마,, 나두 병원 따라 가면 안 돼? 삐삐는 날 제일 좋아하잖아,, 나보다 삐삐가 날 더 원한다니까? 엄마~~!” 
 엄마는 나의 통사정에도 매정하게 삐삐의 신랑 주인아줌마랑 병원에서 만나자는 전화 통화를 하며 애써 나의 눈빛을 피했다. 에휴,,, 이번에도 영어 학원이 문제였다.
나는 삐삐의 배에 뽀뽀를 하고 마지막으로 삐삐의 목덜미를 쓸어주었다.
“언니도 영어 학원 씩씩하게 갈 거니까, 너두 힘내. 수술은 안했으면 좋겠다. 우리 삐삐 파이팅!”
삐삐가 촉촉하게 젖은 눈을 꿈벅이며 나에게 파고들었다.

“멍멍멍...”
문을 열기도 전에 삐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내가 엄마가 됐다. 내 아기들 구경해볼래?’
삐삐는 반갑게 뛰어나와 나에게 자랑을 하기는커녕 새끼들 옆에서 꼬리 한번 흔들더니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힘든 출산을 한 삐삐가 대견스러움도 잠시 삐삐의 가슴속에서 꼬물꼬물 거리며 젖꼭지를 찾아 낑낑대고 있는 세 마리의 새끼 강아지를 보자 삐삐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보다 더 설레고 좋아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수놈 두 마리와 암놈 한 마리였다. 친구 미영이 집에 있는 햄스터 마냥 아주 작은 새끼들은 분홍 돼지 보다는 아주 옅은 오묘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 삐삐처럼 북실한 털이 없어서인지 분홍빛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놓지도 않은 채 바들거리는 강아지를 보며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떤 이름을 지을까하는 생각뿐이다.
‘핑키,,, 까꿍이,,, 좀더 근사한 제이미?’
“엄마, 새끼들 이름 내가 짓는다. 이름 지으면 헷갈리지 않게 목걸이도 사야겠다.”
새로 맞은 식구들로 들떠 있는 나를 보던 엄마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방에서 막대 아이스크림을 물고 나오며 언니가 말했다.
“삐삐는 언니가 지었지만 새끼들은 내가 이름 지어 줄거야.”
언니는 마지막까지 밉상스럽게 혀를 내밀어 아이스크림을 쑥쑥 핥아먹고는 나무 막대기로 허공에 가위표를 그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두 달 있다 입양 보낼 거야. 니가 이름 지어 봤자,, 새 주인이 바꾸면 꽝 되는거라구.”
“입양? 엄마가 여깃는데 왜 입양을 보내? 삐삐가 키우면 되잖아.”
“아유,, 바보야,, 좁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강아지를 4마리나 키우니? 삐삐 결혼식 때부터 정해 졌던 거야.. 그러니까 괜히 이름 짓고 정주지 마.”
헉,, 지금 저 웬수가, 서경 언니가 뭐라는 거야?
눈물이 핑그르르 맺힌 눈으로 나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는 이내 싱크대에서 손을 씻어 앞치마에 손을 닦는 듯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내 곁으로 오셨다.
“모두 우리가 키우면 좋겠지?”
난 다리를 쭉 뻗어 주저앉은 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호기심과 사랑으로 애완견을 기르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유기견이 생겨난단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감당할 수 없어서 끝내 책임을 회피해 버리기 때문이야. 우리 가족이 강아지 네 마리를 키우는 건 많이 힘들거야. 그래서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입양을 보내기로 한거구.”
“엄마,, 내가 더 잘 돌볼게,,, 매일 산책도 하고,, 밥도 챙겨 주고,, 신나게 놀아줄게. 응? 그냥 새끼들,, 삐삐 옆에서,, 엄마 옆에서 살게 하면 안 돼?”
엄마는 두 엄지로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윽한 눈으로 날 보셨다.
“서은이 기억나니? 삐삐를 처음 만났을 때도 네가 다 해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삐삐를 돌보는 사람은 누구지?”
생각해 보니 엄마가 모든 일을 다 하고 계셨다. 난 그냥 학교 다녀와서 간식 먹으며 몇 번 안아주는 것과 저녁 먹고 엄마가 삐삐 목욕 시킬 때 팔딱이는 삐삐를 구경하며 웃다가 수건을 건네는 것 말고는 제대로 삐삐를 돌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참, 암놈은 부산 고모네 집으로 갈 거야. 방학 때 놀러가서 만나면 되겠다. 그치?”
정주지 말라던 언니의 말이 무색하게 삐삐의 새끼들을 보는 순간 정이 흠뻑 들어버렸나 보다. 눈으로만 봤는데,,, 손으로 한번 쓰다듬어 보지도 않았는데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핑그르르 돌던 눈물이 이내 콸콸 쏟아졌다.
엄마는 말없이 젖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가 나를 더 이상 설득하려 애쓰지 않는 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내가 더 졸라도 소용없는 일 이란 걸 안다. 그리고 사실 내 자신도 강아지를 네 마리씩이나 책임지고 기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속내를 감추기라도 하듯 엉엉 소리 내어 엄마 품에서 울어버렸다.
‘삐삐야, 니 아가들 언니가 두 달 동안이라도 많이많이 사랑해줄게. 그리고 니가 강아지랑 헤어져도 상처받지 않도록 언니가 널 더 감싸안아줄게. 예쁜 새끼 강아지들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
이런 소란에도 삐삐는 새끼들에게 젖을 내어주고 눈을 감고 있었다.

허선영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