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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여기와 나

조소현/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교생 인턴쉽이 끝나고, 새학기를 맞이하기 전까지 비는 시간 동안 콜로라도에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꿈틀대는 욕망이 마음을 비집고 나와 ‘한국행’을 과감히 택했다. 인생은 어떨 때에는 지르고 볼 일이다. 오지않은 미래를 위해서 웅크리고 힘을 비축할 필요도 있지만, 내게 재충전은 오랜만에 말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그 수다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이었다. 4년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안되고 아쉽고 갈증이 극심한것 이 바로 이 수다이다. 덴버에서 일본까지 열 두시간의 길고 긴 긴 비행은 내 몸을 고문했지만, 그 고된 문을 통과하니 가족과 친구들의 정다운 얼굴들이 있었다. 아, 이 얼굴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웃으며 밥 한 끼 하기 위하여 내가 여기에 왔구나! 싶었다. 물론 나와 가족, 나와 친구들의 수다는 같은 현실을 공유한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아니었다. 나는 콜로라도에서 내 아버지는 진천에서, 나의 어떤 친구는 김포 공항 근처에서 각자의 일상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에 우리의 대화는 교집합을 찾기도 하고 어떨 때는 공유되는 부분이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서는 서로를 향한 정이 뚝뚝 묻어난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일종의 회피이자 탈출이며 일탈이다. 학생에게 방학이 필요하듯이, 미국이 일상인 내게 한국행은 미국이라는 환경과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콜로라도에 있을 때는 그렇게도 미국살이가 외롭고 고달프게 느껴졌다. 서른이 넘어 미국에 온 나로서는 그렇게도 적응하는것이 쉽지가 않았고, 아주 작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일들에서 미국살이의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드라이브 스루로 주문을 할때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내 말을 못알아 듣는다 싶으면 받게되는 당혹감에 반나절이 우울한 것이다. 이 모든 서러움과 외로움이 인천 공항만 밟으면 다 사그라들 줄 알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러하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질문에는 바로 두 단어가 있다. 여기 그리고 나.

대학교때 친구들을 만나러 아주 오랜만에 학교에 가 보았다. 교정을 돌아보면서 4년 전 기억이 떠 올랐다. 회사에 다니면서 오랜만에 학교에 갔을때였다. 추억이 새록새록 돋았지만, 더 이상 현재 여기에 나는 없었다. 이미 나는 교정이라는 풍경에서 관찰자의 자리에서 학교를 돌아보고 있었다. 한국이 내겐 교정이 되어있었다. 한국에 나는 방문하러 온 것이지 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더하여 친정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다. “너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너는 학생이이게 앞서 생활인이다.” 친정 아버지의 저 말씀이 이해가 될듯 하면서도 아리송하였지만, 생활인이라는 저 표현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내가 정의한 생활인은 그 자리에서 그 시간에 최선을 다 해 사는 것.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미국에 돌아가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내가 속한 사회에 적응해 보기로. 우스개 소리이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내가 한국을 방문한 지 열흘이 넘은 현재로서 내 기분은 뭐랄까, 옛 애인을 잠시 만난 기분이다. 미국이라는 현재의 남편은 말이 통하긴 하지만 외국어로 소통하기에 뭔가 말맛, 글맛이 쉽게 나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남편은 조용하고 단조롭다. 한국이라는 애인은 시끌벅적하고, 다이나믹하다. 하지만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은 당분간 콜로라도 덴버이니, 이 환경과 조건을 최대한 잘 이용하는 것이 현재의 정답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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