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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결혼 이민을 앞에 둔 나의 친구에게

조소현/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오랜만에 들어온 한국. 처음으로 들른 친구의 오피스텔에서 하얀 천정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스스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왜 나는 내 일도 아닌 친구의 일에 이렇게도 잠도 못자면서 이 생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십년지기 친구 H는 영국인 남자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며 결혼 이민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중이라는 말을 꺼냈다.

나는 미국 콜로라도에서 친정 방문차 한국에 나와있는 터였다. 아, 이 친구도 사랑 이라는 말 저 풍선과 같은 하나의 단어에 자신의 운명을 실으려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자 왠지 득달같이 말려야 할것 같았다. “친구야, 내가 진심에서 하는 말인데, 이건 나의 처절한 결혼 이민 생활 오 년 경험에서 하는 조언인데, 깊이, 정말 정말 깊이 깊이 생각해 봐. 너의 이 모든 것. 친구, 가족, 좋은 직장…… 정말 다 버리고 남자 하나보고 영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갈 수 있겠어? 정말로? 응?” 이렇게 설득하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이렇게 말해봤자 현재의 내 친구 귀에는 아무 말도 안 들릴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왠지 나는 친구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 말리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너무나도 달콤하고도 진했던 그 로맨스 때문에, 그 콩깍지 때문에 미국의 ‘미’자도 모르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오 년 전 달랑 가방 하나 들고 당시의 남자 친구와 둘만의 인생을 시작해 보겠다고 그렇게 나는 미국 중에서도 오지와도 같은 오클라호마 주에서 삼년을 살았고, 현재는 콜로라도 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사실 의식주가 해결되었기에 결혼 이민자로서 나의 외로움과 고민들은 어쩌면 응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자는 느끼지 못하는 황야의 누런 바람과도 같은 텁텁한 외로움과 고독은 언제나 이민자라는 말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또한 삼십년을 나와 다르게 산 사람과 한 공간을 쓰면서 함께 인생을 일군다는 것은 생각외로 크고 작은 난관들을 넘어야 하는 일이었다.



깔끔쟁이 군인인 내 남편의 눈에는 내가 밥을 먹다 밥알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바로 줍지 않는 것이 불만이고, 그 밥알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시선 때문에 나는 목구멍 안의 밥알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스스로 이상한 고집을 부리며 굳이 밥알을 바로 줍지 않아서 결국 밥알 튀는 부부싸움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영어만 쓰는 미국살이에서 한국음식만큼이나 한국어 수다가 고팠다.

수다는 일종의 정신적 치유제이면서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비밀의 약과도 같다. 오 년째로 접어 들고 있는 결혼생활이, 이민생활이, 너무도 고달프고 외로웠다고 친구들을 만나서 응석을 부리고 싶었는데, 친구들은 의외로 ‘잘 살고 있네!’라며 함께 호탕한 웃음을 한판 웃어 주었다. 그러면 그 일상의 자잘하게 쌓였던 스트레스와 고뇌와 슬픔들이 참으로 작고 사소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내 앞의 이 소중한 십년 지기 H는 그 좋은 직장과 가족과 친구를 멀리한 채, 대서양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오년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나는 그렇게도 이 친구를 말리고 싶었나 보다. 친구의 오피스텔이 있는 아스팔트 숲을 지나 H와 헤어지고 친정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 동안 속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써 본다.

“H. 사실 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하고 응원할게. 그게 친구의 역할이 아닐까.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당사자인 네가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니 말이야. 아마 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일이 그렇게 한 순간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문이 열렸을때 발을 내딛는것도 네 인생의 다른 장이 열리는 순간이겠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너의 힘, 잠재력에 건투를 빌게.”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도 겁없이 태평양을 건너려는 나를 그렇게 보내주지 않았을까. 그들의 사랑과 우정이 내 미국 이민생활의 밑거름이자 물이자 배경이리라. 이제 며칠 후면 다시 비행기에 오르는 나는 모국에서 재충전한 에너지로 올 2017년을 건강히 잘 살아가야겠다.

조소현/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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