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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머니(Money)가 뭐니?

조소현/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최고란 우스갯소리를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옛날 옛적에 허름한 도포를 두르고 다 쓰러져가는 사랑채에서 너덜거리는 책장을 넘기며 식솔들이 끼니를 해결하던 말던 그저 선현들의 글귀를 읊어대는 선비가 아니라면 적어도 머니가 최고란 말에는 고개 한 두 번 정도는 끄덕끄덕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 웃기지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

하고 송혜교를 벽에 밀어붙여 돈 자랑을 하던 원빈도 끝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은 사랑이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는 않지만 살아가며 인간답게 누릴 삶의 최소한의 도구는 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중에 영화나 스포츠처럼 좋은 처방도 없을듯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영화 관람만은 무조건 허락하는 것은 무한한 상상력에 환호할 수 있고, 의외의 반전에 온몸에 전율이 흐를 수도 있고, 가보지 못한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을 두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십불의 행복으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품안에서 언제나 아기라고만 생각했던 아들이 제법 머리가 커져서 마냥 유치하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게 된 7학년 즈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유독 극장에서 파는 팝콘과 음료수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조용히 관람하는 영화에 방해가 되는 이유도 있지만 이건 티겟 장사인지 팝콘 장사인지 헷갈릴 만큼의 가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들 주전부리하는데 애들을 그냥 보내긴 그래서 집을 나서기 전 주섬주섬 비프저키와 크레커 그리고 생수 2개를 챙겨서 극장으로 향했다. 티켓을 사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가방에서 부시럭대며 집에서 싸온 물병 두 개와 비스킷을 꺼내 건네주었다. 딸은 먹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고 아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왜, 너도 안 먹어? 일부러 가져온건데 먹어.”

내가 내밀고 있는 봉투와 함께 내 손을 꼭 잡고 아들은 어디론가 향했다.

“엄마, 이거 봐봐!”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극장에서는 외부 음식 반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었다.

‘나도 안다알아. 그런데 팝콘이랑 음료가 너무 비싸잖아!’ 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아들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엄마는 법을 잘 지키라고 하면서 왜 돈하고 관계 된 것은 안지키는거에요? 팝콘이 비싸면 안 먹으면 되는데 왜 비스킷을 들고 가라고 하는거에요? 이건 속임수에요.”

순간 얼굴이 빨개지면서 머릿속에서 팝콘이 팡팡 튀어서 어질어질했다. 바르게 살라고 백번을 말하면 뭐하나... 사소한 행동으로 부모로서 본이 되지 못하는데... 자식 앞에서 겪는 이런 부끄러움을 몇 푼 안 되는 팝콘과 맞바꾸다니... 아들에게 더 이상 받아칠 말이 없었다. 중학교 때 배웠던 유구무언이라는 한자가 떠오르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아이들은 두 손과 마음도 가볍게 극장 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방에서 꺼낸 비프저키를 뜯으며 남편과 함께 아들의 말 한마디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면서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다.

“꽉 막힌 자식.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세상 어찌 사나?”
“그렇긴 한데, 너무 똑 떨어지게 말하니까 할말이 없더라구.”
“이젠 좀 컷다고, 세상눈치보다 아들눈치를 먼저 봐야겠네.”
“후후, 우리도 나름 순수했다가 살면서 요리조리 때가 묻었겠지?”

언젠가 더 큰 세상을 마주하다보면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고 또 어쩔 수 없었다며, 그것이 최선이었다며 사소한 범주를 넘어선 것에도 양심을 팔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는 평생 다 쓰고 죽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부리다 결국에는 감옥행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돈을 쉽게 얻는 수단으로 권력을 남용하며 힘없는 사람들을 더욱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자신이 믿는 신에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간절히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돈 앞에 무릎 꿇어서 신을 무안하게 하기도 한다. 7학년이었던 아들은 지금 10학년이 되었다. 부모로서 아니 한 사회인으로서 부끄러웠던 그날 이후로 극장을 향하면서 조심스레 부스럭대며 간식을 챙기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칙대로 하면서 물질적 손해를 볼지라도 귀한 양심은 다치지 않고 자라길 기도한다.

조소현/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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