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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관계의 이동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일상을 벗어나 몇 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인들의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쇼핑의 즐거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루하고 고된 비행은 힐링이라는 여행의 기본 취지에 걸맞지 않는 거추장스러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입국 심사대에서 한국 여권을 내밀며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말들과 입국심사관의 “친지 방문인가요?”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고국이라는 단어가 주는 뭉클함에 코끝이 찡한 반전이 금세 찾아왔다. 시댁에 짐을 풀고 며칠사이에 저만큼 멀어져만 있었던 관계들이 성큼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며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같이 고민하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남편들의 흉을 보던 동네 친구들과의 관계는 물리적인 거리의 시차 때문에 성큼 다가온 관계들에 밀려 저만큼 멀어져갔다.

4년 동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감탄하는 시부모님들의 얼굴이 아이들의 크는 속도보다 훨씬 늙어버림에 가슴이 아팠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던 이웃의 아이들을 보며 우리 집 아이는 안 크고 남의 집 아이만 큰다는 말을 하며 웃었는데 4년 만에 보는 조카들은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청소년에서 멋진 대학생으로 대학생에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멋지게 성장해 있었다. 당연히 시누이들과 형님의 늘어난 새치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가족이라는 힘은 대단했다. 전화와 이메일 그리고 요즘 세상을 하나로 묶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각종 SNS덕분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하고는 지냈지만 속속들이 알지 못했던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짧은 한 시간 만에 빛의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었다. 잠시 3박4일 여행을 갔다 집으로 돌아온 기분? 소소한 일상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혹시나하며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긴장하지 않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안정감이 온몸을 휘감고 심장의 요동을 여유롭게 만들었다.

여유로움에 적응이 될 즈음 휴스턴의 지인들이 궁금해졌다. 아이들은 썸머 켐프를 잘 다니고 있을까? 친구들은 더위에 아이들 라이드를하며, 밥하며 잘 지내고 있나? 이때쯤 같이 모여서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한번 했을텐데... 밀접하던 관계들이 물리적으로 멀어지니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의 가족들이 아련해지고 한국에 오니 미국에 있는 지인들이 아련해졌다. 아련함, 그리움 등의 감정은 그래도 끈끈한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움이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 좋아했다 나빠질 수도 있고 사랑했다 미워할 수도 있고, 무심했다 호감을 갖게 될 수도 있는 수많은 관계의 성격들 중에서 나는 주변인들과 어떤 관계들을 맺고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단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에 미용실에서 다듬은 찰랑한 머리칼을 끄덕이며 깊이 공감한다. 설령 멀어지더라도 아주 끊어지지는 말자고 관계의 끈을 매일 정리해본다. 14시간을 날아 온 한국에서 나의 수많은 (뭐, 아주 마당발은 아니지만) 휴스턴의 관계들과 소원해지더라도 바로 옆에, 손닿는 거리에 있는 부모님과 친지들 그리고 꼬꼬마 시절을 함께 보낸 고향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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