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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할마와 할빠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요즘 우리 부부는 3살짜리 손주 재롱에 푹 빠져 지내느라 집안에 웃음 그칠 날이 없다.나주羅州 정씨丁氏 30대손으로 한국 이름은 준영, 영어 이름은 이든Ethan이다. 큰아들이 결혼하여 5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인데, 어찌나 영특한지 초등학교 애들이나 할 법한 말을 불쑥 해서 어른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한국에는 부모 대신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가정이 많아져 할마, 할빠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할마는 할머니와 엄마, 할빠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합성어인데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우리처럼 손주를 돌봐주는 조부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 길러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면 끝이라고 여겼던 조부모에게 손주를 길러야 하는 황혼 육아의 미션이 주어진 셈이다. 자식이 힘들 게 사는 모습을 보면 안 도와줄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황혼 육아는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 보육실태 조사에 의하면 영유아의 70% 이상이 조부모의 돌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큰아들도 맞벌이 부부다. 아이가 태어난 후 백일 동안은 며느리가 출산휴가를 받아 키웠지만,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에 맡겨야 했다. 두 살이 될 때까지 아는 할머니와 우리 부부가 이틀씩 돌봐주었고, 주말에는 애들이 맡아 정성껏 키웠다. 요즘은 조금 자라서 ‘Creme de La Creme’이라는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일주일에 두 번은 우리가 픽업하여 돌봐준다. 며느리가 퇴근길에 데리러 올 때까지 손주와 동네 산책도 하고, 장난감 놀이도 하며 정을 주노라면 이런 게 아이 키우는 재미인가 싶기도 하다. 새록새록 예쁘니 말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일만 하고 사느라 쌍둥이 아들과 놀아 주질 못했다. 그런 쪽으론 부족한 아비여서 늘 미안했고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그 오랜 미안함을 요즘 손주를 돌봐주는 것으로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 물론 아내의 수고에 비하면 내 수고는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아내도 힘은 들지만, 손주와 눈높이를 맞춰가며 동화책도 읽어주고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정성으로 챙기고 있다. 30년 전 쌍둥이를 키우던 노하우를 몽땅 꺼내서 할마 사랑을 듬뿍 주고 있다. 아내에게 웃음을 되찾아준 손주가 고맙다.

어느새 어른이 된 큰아들이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키우는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다. 아들은 예능 프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남자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모습 이상으로 아빠 노릇을 멋지게 잘하고 있다. 미국이라 가능한 일이지만 아들은 오후 4시에 퇴근을 한다. 일찍 오면 아이와 놀아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저녁도 먹이고 아내의 일을 덜어주려는지 목욕도 시킨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동물원이나 놀이동산을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고 가르치고 함께 놀아 준다. 아이의 인성은 세 살 이전에 형성된다면서 감성코칭이란 책을 사 읽더니 우리도 보라고 건네주었다. 아이의 감정을 통제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되 무조건 모든 감정을 수용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른 행동을 했을 때는 바르게 훈육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대모님께서 손주가 보던 책을 주셨다. “똘망 똘망”이라는 동화책60권과 “프뢰벨자연관찰” 80 권짜리 등인데, 종류도 많고 워낙 잘 알려진 책들이라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중고 책값도 만만치가 않았다. 우체국에 가서 배로 부치려고 다시 포장하니 다섯 상자나 되었다. 두 달 만에 도착한 책들을 손주 눈높이에 맞게 꽂아놓고 몇 번씩 읽어주며 CD를 들려주었더니, 이제는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찾아내고 CD를 틀어달라고 한다. 아직 글도 모르는 녀석이 보고 싶은 책을 어떻게 골라내는 건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아직은 아들 내외에게 섭섭한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옛날부터 ‘애 키워준 공은 없다’는 말이 있다. 잘 못 되면 애 봐 준 사람을 탓하고, 별 탈 없이 잘 자라면 애가 순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다.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면 별 무리 없을 거라 생각한다. 손주의 교육은 전적으로 애들이 하자는 대로 따를 생각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할 수 있는 아이Bilingual로 키우겠다 하니 나도 기쁘다.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겠지만,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 한국말을 못하는 자녀들 때문에 의사소통이나 교육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한 부모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2012년 국립국어원은 황혼 육아로 육체, 정신적 질병을 얻은 상태를 일컫는 ‘손주병’을 신조어에 추가했다. 아내가 손주병으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으로 손주를 돌보아야 할지 걱정이 많다. 앞으로는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체력을 보강해야겠다. 아내가 보채는 손주를 안고 업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허리와 무릎 등에 무리가 왔다. 애를 봐준 날 저녁에는 통증 때문에 힘들어한다. 내가 안아도 무거운 손주를 업고 음식을 장만하는 아내를 보면 무척 안쓰럽다. 저녁에 아빠나 엄마가 데리러 와도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면서 할머니에게만 매달리는 손주를 보면 걱정이 된다. 8월에는 기다리던 손녀가 태어난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동생이 태어난다는 것을 눈치채서 괜한 떼를 부리곤 한다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할아버지는 가라고 뿌리치는 손주가 미울 때도 있다.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작은아들도 육아에 동참하고 있다. 자동차나 로봇 장난감 놀이 외에 블록 쌓기와 레고 놀이 시간을 늘리고 있다. 아내는 한국 나이로 미운 네 살인 손주와 말을 주고받으며 언어 능력을 키워주고 있는데, 그동안은 일부러 보여주지 않았던 유튜브 동영상인 또봇이나 카봇도 보여주며 어휘력이나 창의력 계발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TV에 재미를 붙였는지 더 보겠다고 떼를 쓰기도하고, 사달라, 더 놀아달라 투정하는 버릇까지 생겨 걱정이 된다. 미국식 교육에 Time out과 Thinking chair라는 훈육법이 있는데, 우리 애들은 어린이집에서 하는 Time out 방식을 취한다. 한국식 체벌과는 달리 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혼자 벽을 보고 앉아 반성하게 하고, 그다음에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말해주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도 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손주가 상처를 입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염려가 되기도 한다. 손주라고 무조건 오냐오냐할 수도 없고,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면서 사랑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벌써 은퇴한 지 2년이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휴스턴에는 특별히 사회활동 할 곳도 마땅치 않아 소위 말하는 삼식이와 젖은 낙엽으로 살고 있지만, 손주 재롱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지내고 있다. 할마와 할빠의 소원은 손주가 바르게 커서 대학 공부를 마치고 결혼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지만, 그건 우리의 욕심일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귀요미 준영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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