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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롸키, 고고!

조소현/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왈Warf 왈Warf! 멍멍! 내 이름은 로키이고 별명은 소시지 독 Sausage Dog이지요. 진한 갈색의 짧은 털에 몸이 유난히 길지만 네 다리는 아주 짧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는데 사람들은 그런 제 모습이 멋있다기보다 귀엽다고 깔깔거립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두 귀를 바람에 휘날리며 뜁니다. 주인님들이 기뻐하시기 때문이죠. 저는 이분들을 사랑합니다. 주인님들 덕분에 다른 미국 강아들보다 훨씬 명석하고 사람의 마음을 소리로 들을 수 있답니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요?

“왈왈Warf Warf!, 멍멍!”

눈치 채셨나요? 저는 한국어와 영어를 아주 잘 알아듣습니다. 심지어 대답도 두 언어로 할 수 있지요. 이토록 훌륭한 귀를 가지고 있는 덕에, 저는 주인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뿐만 아니라, 사랑의 통역사이고 심리 치료사입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수진 님과 영어가 모국어인 잭 님 사이에서 저는 뛰어난 통역술을 발휘합니다. 머잖아 제 기술을 한번 보시게 될겁니다. 주인님들을 소개해 올립죠.

잭 리씨는 미국의 중부,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에요. 현재 그는 주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수진 양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른이 되는 해에 이 곳 미국으로 왔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오 년차 부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올 해 딱 세 살이 되었습니다.



수진이 미국에 온 초기에는 긴 생머리에 생글거리는 눈으로 제 이름을 롸키Rocky라고 불러줬지요.

“너는 롸키Rocky 산이 있는 콜로라도에서 태어났단다. 네 이름은 한국식 발음인 ‘로키’도 아니고 롸키야. 영어식으로 불러줄게! 캄 온, 롸키!”

그러면 저는 수진의 마음을 금방 알아채고 대답도 영어로 해 줍니다. ‘왈Warf, 왈Warf, 수진! 당신의 맘을 알겠어요. 꼭 혀를 굴려서 대답해 줄게요!” 나는 이토록 수진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척척 잘도 알아 맞힙니다. 수진 님은 마음이 조급합니다.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그녀가 막상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튼튼한 직장에 다녔던 그녀가 콜로라도에서는 남편만 바라보는 실직자가 되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 답답하고 갑갑할까요.

배고픈 강아지의 쳐진 꼬리처럼 위축된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 그것이 제 첫번째 대화의 기술입니다. 수진 님이 개똥에 대해 이야기하든 말똥에 대해 이야기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녀의 눈을 맞춰주고, 마음의 소리를 잘 알아들어 주면 됩니다. 제 뾰족하고 잘생긴 검은 콧등과 혀를 그녀의 손에 갖다 대면 주인님의 화난 목소리와 상기된 표정은 서서히 식어갑니다. 제 콧등은 온도에도 민감해서 수진님의 마음을 잘 알아차릴 수 있지요. 왈왈!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영어식으로 짖어주기. 그러면 수진님과의 대화는 성공이죠.

수진의 긴 생머리가 어느날 싹둑 잘려 단발머리가 되었습니다.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는 현대 미국인으로 거듭나겠다는 그녀의 굳은 의지가 느껴집니다. 수진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미국살이가 만만치 않음을 느낍니다. 혀만 조금 굴리면 서울에서 살던 때처럼 화려하고 멋진 미래가 그녀를 기다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혼도 처음, 미국 살이도 처음인 수진은 쉽게 기가 꺾이고 쉽게 지치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억양때문에 영어를 못알아 듣는것 같아 그녀는 얼굴이 빨개집니다. 남편과의 사소한 부부싸움도 서울에서라면 왠지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것 같은데, 친정식구 한 명 없는 이 곳에서는 작은 싸움에도 화가 나고 서러워 눈물이 펑펑 납니다.

왈Warf, 왈Warf! 수진! 조금 만 더 참아봐요. 당신은 이 곳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수 있어요.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의 완성이든 성공한 직장이든 간에요.

저의 교포 주인님 잭은 저를 다르게 부른답니다. 그의 부모님은 사십년 전에 이 곳으로 이민을 오셨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가 바로 잭 리씨입니다. 잭은 늘 짧은 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닙니다. 옷을 입는 스타일이 미국인처럼 헐렁하게 셔츠를 입습니다. 미국인의 옷 입는 스타일이죠.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잭 리씨는 옷차림 만큼이나 미국의 문화와 사회가 익숙합니다. 잭 리씨의 또다른 마스코트는 바로 검은 선글라스. 혹시 콜로라도의 별명을 아시나요? 마일 하이 스테이트Mile High State. 다른 곳에 비해서 일 마일 정도 지대가 높아 그만큼 태양볕도 따갑다는 말이죠. 잭님은 집으로 돌아와야 검은 선글라스를 벗습니다. 가끔은 휘파람을 불면서,

“럭키, 행운아 행운아! 이리와. 쫑! 쫑!”

저를 부른답니다. 그러면 저는 잭 님의 취향에 맞게 한국 똥강아지처럼 멍멍! 푸근하게 짖어대며 달려갑니다. 저는 잭 님의 선글라스 뒤에 감춰진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고독입지요. 미국은 강아지인 제 눈에도 밤부 실링이 촘촘하게 쳐져 있는것 같습니다. 밤부 실링Bamboo Ceiling이 뭐냐고요? 백인 중심의 나라에서 아시안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지요. 대나무 천장이 성공으로 가는 길 위에 쳐져 있기에, 이 촘촘한 천장을 뚫고 우뚝 서기가 잭 리에게도 아마 버겁게 느껴질 겁니다. 멍! 멍! 또한 그에게는 오직 그의 성공만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그의 부모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잭 님은 사회적 성공과 부를 언젠가는 단단히 움켜쥐어 보란듯이 부모님께 보상해 드리고 싶습니다.

잭 님은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멀쩡히 잘도 걷고 있는데, 목줄이 좀 타이트 하다고 판단이 되면, “럭키 스탑!” 소리를 지르고 줄을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저는 그것이 잭님의 심적 만족을 위해주는 길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그의 해결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몇 분 전보다 더 활발하고 생기있게 뛰어줍니다. 그러면 잭 님의 얼굴에는 아빠미소가 걸리지요. 멍!멍!

저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는지를 압니다. 오전 일곱시면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홀로 남은 수진은 저를 무릎에 앉히고 자신의 넉두리를 한답니다.

“롸키, 지금 내 꼴 좀 봐. 누가 보면 한가로운 전업주부 같겠지만, 솔직히 너무 외롭고 심심해. 아, 그때 왜 내 눈에 그토록 두꺼운 콩깍지가 씌였던걸까?

육년 전 그 날은 여름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었어. 넌 미국에서 태어난 강아지라 모르겠지만, 홍대 지하철 입구에는 정말로 네가 상상하기 힘들만큼 사람들이 많아. 그때 처음 만났어 니 아빠 잭을. 외모는 평범했는데, 어머어머. 입만 열만 윤기가 주르르 흐르는 미국인 영어가 흘러나오는거야. 네 아빠와 대화를 하는데, 바로 그 이슬처럼 맑고 영롱하게 들리는 영어 발음에 그만 내 영혼이 송두리째 홀려버렸어. 하하하.

네 아빠가 뭔가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것 같고, 나는 한 번도 안 가 본 미국이라는 곳에서 왔으니까 괜히 더 멋져보였나봐. 내가 참 순진했던거야. 그렇게 순진했으니 무모하게 내 운명을 결정해버린거지. 한번 사는 인생, 이 남자한테 내 삶을 걸어보자고.

롸키, 난 네 아빠와 데이트 하면서, 열 살 때부터 영어에 퍼부은 교육비를 생각하며 영어 좀 써 먹어 보려고 혀를 엄청 굴려댔어. 우린 데이트 할때는 정말 영어만 썼어. 그때 상상했던 내 모습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현대 미국 여성이었어.

하지만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어. 그게 내가 네 아빠와 영어로 하는 대화의 전부였다는 걸 말야. 결혼이라는 이상한 나라안으로 들어가니, 네 아빠는 혀가 고장이 났는지 한국말만 하는거 있지? 롸키,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네 아빠는 집 문 밖을 나서면 영어만 쓰는 미국인이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자신의 부모가 쓰는 한국어를 쓰잖니. 그것도 70년대식 한국어.

롸키, 네 아빠와의 연애는 일 피트 정도 현실에서 떨어져 붕붕 떠 다니는 너무나도 달콤한 시간들이었어. 거기에 빠져 난 과감하게 결심하고, 내 인생을 걸고 직장과 가족을 뒤로 한 채 무언가를 찾아 미국으로 날아왔지.”


스메끼리와 손톱깎이 사이
수진은 잭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잭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미국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돼요. 역시나 사람은 살아보고 겪어봐야 안답니다. 강아지도 똑같습니다. 주인님들의 성향은 겉으로는 절대로 모릅니다. 암요. 잭은 사실 영어를 미국인처럼 잘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잭의 영어 혀는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모드가 바뀐다고나 할까요? 직장인 모드에서 남편 모드로 스위치가 켜지면 잭 주인님은 한국말로 수진에게

“와루바시 좀 줘.”

“와, 와루바시? 뭐라고 한거야? 풋. 하하하하하!”

잭의 입에서 외할머니가 쓰셨던 일본말이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어렸을 적 수진이 외할머니 댁에서 들었던 단어들이 가끔씩 잭의 입에서 나옵니다.

“허니, 스메끼리 어디있어? 스메끼리!”

수진은 몇 번 듣다못해, 안되겠다 싶은지 화이트보드와 마커를 가져와 잭의 낙후된 한국어들을 고쳐줍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잭의 언어 선생이 되라고 말합니다.

“롸키, 앞으로 잭이 스메끼리, 와루바시. 이런 말을 하면 너가 막 짖어대. 알겠지? 현대인이 두루쓰는 표준 서울말. 이걸 써야한다구!”

그러나 수진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은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멀리 그것도 아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것을. 따라서 현대 한국인의 표준말 흐름에서 자신도 조금씩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수진은 한 가지 더 알아 차렸습니다. 그들이 연애를 했을 때 수진이 잭의 영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만큼 영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갈망하는 타국의 언어였기에 매력적이었습니다. 수진은 이제 부부가 된 두 사람 사이의 언어적 거리가 실제로는 ‘스메끼리와 손톱깎이’ 만큼이나 이질감있게 느껴집니다.


단순함과 복잡함의 세계
사실 강아지인 제 눈으로 보기에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지요. 그저 주인님이 밥을 주면 제 때 허기를 달래고, 같이 산책을 가 주면 열심히 뛰면 됩니다. 또 주인님이 제게 귀엽다고 간식을 주실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수진님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제가 보는 세상과 천지차이인가 봅니다. 수진님은 오늘도 제게 하소연을 합니다.

“아니, 이건 뭐, 도대체가 맞는 게 하나도 없어. 잭 리와 나는 성씨가 다르듯이 모든 게 달라. 내가 살아온 가족 문화는 각자 잘 살자인데 리씨네 집안은 ‘뭉쳐야 잘산다’가 집안 가훈같아. 롸키, 내 눈이 이상한 거 아니지? 네가 봐도 그렇지?

그래. 그것도 그냥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 천지 차이 같은 두 세계가 어떻게 하면 갈등없이 하나의 세계로 다시 만들어지는거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겠지만, 결혼은 그렇다기보다 아내와 남편의 새로운 법을 함께 만들어 가는거 아니야?”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야 하건만, 수진 주인님은 오늘도 강아지인 저를 붙잡고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습니다.

“아, 미국도 이젠 지겹고 힘들어. 미국 좋은거? 그냥 쓰레기 분리수거 안하는거랑 공기가 맑은거? 한국에 가면 친정 식구들도 다 있고, 친구들도 많은데, 록키야, 내가 지금 서른 다섯인데, 이 나이에 한국에 가면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또 남편은 여기에 두고?

미국 드라마를 통해서 갖게 된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허구 그 자체임을 이제는 알아. 그런데 누굴 탓하겠니?

에휴…… 롸키, 그래도 창가를 봐봐. 콜로라도의 파랗고 푸르른 하늘 하나 만은 마음에 쏙 들어온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한국의 미세먼지를 카톡으로 전해오지만, SNS에서는 그 답답하고 깝깝한 미세먼지의 퀘퀘함을 느낄 수 없어. 내 눈에 들어오는 저 푸르른 하늘을 너랑 나랑만 볼 수 밖에……

롸키야. 사실은 나 미국에 살면서 사촌 언니 말이 자주 떠 올라. 그 언니 말이 ‘여자 팔자는 버들가지 팔자’ 라고 했거든. 버들 가지는 어떤 땅에 심어지느냐에 따라 그 땅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거야. 진흙 땅에 꽃히면 진흙 땅에서 살게 되고, 마른 땅에 꽃히면 평생 목마른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대. 내가 꿈꿨던 아메리칸 드림, 자유 이런건 너무 허황된 생각이었을까?”

수진님이 공허한 웃음을 날립니다. 내 귀에 수진 님의 쓸쓸한 마음 소리가 들려 오네요. 그 헛한 마음을 지워보고자 이유없이 현관에 대고 멍멍 짓어 봅니다. 저를 데리고 동네라도 한 바퀴 걸으면 마음의 여유가 들지도 모르잖아요. 수진 님은 운동화를 신고 제 목에 끈을 답니다. 우리는 작은 아파트를 빠져나옵니다. 덴버의 십육가는 사람들로 복잡합니다. 영화관, 파네라 빵집, 일식집 멘야, 옷집 유니클로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덴버의 우뚝 솟은 고층 건물들과, 그 건물에 걸맞게 양복을 차려입은 주로 백인 회사원들. 이들의 큰 키와 빛나는 구두, 빠른 발걸음 소리에 수진씨는 기가 죽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앞장 서서 수진님이 활기차게 걸을 수 있도록 열심히 달립니다.


멍멍 나는 야 심리치료사. 왈왈!
그렇게 수진 님은 외로운 타향살이의 하루를 홀로 잘 버텨 주었습니다. 저와 함께 말이죠. 문제는 저녁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식사를 준비한 수진 님. 부엌에는 이 콜로라도에서는 쉽게 맡을 수 없는 두부와 배추를 넣은 시원한 된장국 냄새가 사르르 거실을 채웁니다. 그리고 이와 어울리는 잡곡밥이 한국에서 물 건너온 쿠쿠 압력밥솥안에서 칙, 칙, 소리를 내면서 궁합을 맞춰줍니다. 수진님은 애정을 담아 계란말이까지 말았습니다. 저녁 식탁이 완성되고, 제 시간에 귀가한 잭 님도 선글라스를 벗고 식탁에 앉습니다. 수진 님이 입을 엽니다.

“아, 정말 난 힘든 하루였어. 아니야. 잇 워즈 리얼리 하드 데이 투데이 포미.”

“What was so hard?”

저는 코를 접시에 박고 열심히 제 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바로 이 한마디에서 한국 대 미국 부부싸움 일차전이 벌어지리라는것을 경험상 직감했지요.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큐피트의 화살이자 사랑의 통역자인 제가 나설 차례입니다. 잭 님! 그 말은 오답이에요! 잭 님이 사랑하는 수진님이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랍니다. 물론 당신께선 문제를 해결하고자, 즉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를 말해 주면 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의미의 질문이라는 것을, 저는 이 로키는 알고 있지만 아마도 수진님의 귀에는 그 말이 그렇게 들리지 않았을 거에요. 저는 잭 님을 쳐다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짖어댔습니다. 멍멍! 잭님, 아내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세요.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수진님의 눈꼬리는 이미 치켜 올라갔고,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습니다. 한국어를 하든 영어를 하든 중국어를 하든 화가 나면 사람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는 것은 똑같습니다.

아. 여기에 사랑의 통역자인 제 운명의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개라는 것. 제가 아무리 속속들이 우리 주인님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의 화려한 통역술은 단 한마디 왈왈!, 멍멍!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진심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잭과 수진님을 향해 다시 짖어 봅니다. 멍!멍!

“아니,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니? 꼭 그렇게 물어야겠어? 좀 다정하게, 자기야. 여기에 아직 아는 사람도 없이, 외롭고 힘들었지? Honey. It must have been tough day for you. I understand. However, I know that you can endure this time. 뭐 좀 이렇게 말해줄 수 없어? 왜 매사를 좀 그렇게 삐딱하게만 보려고 하는거야?”

아, 여기서 또 둘의 대화는 초점을 벗어나 날 선 감정의 버튼을 조금씩 세게 눌러대기 시작합니다. 수진님… 아무리 수진님의 남편 분이 님의 감정을 잘 읽어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삐딱하게 보려고 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 모르는건 아니시죠? 다만 수진님도 사랑만 믿고 찾아온 타향살이가 지치고 힘들어 위로를 받고자 한 것이었는데, 상대방의 말이 오히려 위로는 커녕 문제의 원인이 수진님이라는 듯이 몰아세우는 말투에 화가 나는 겁니다.

아, 강아지는 미세한 것까지도 잘 포착해 내는데, 왜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 두 사람은 그 차이를 읽어내지 못하는 걸까요?

수진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옵니다. 왈왈! 주인님 어딜 가시는거에요? 나는 이제 사랑의 통역사, 치유사를 넘어 보호자가 되어 수진님 뒤를 졸졸 따라 갑니다.

아, 이 곳은 다시 덴버의 가장 화려한 거리 십육가입니다. 그녀는 소매점 티제이 맥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흰색과 빨간색 간판 아래 유리창에는 Now Hiring! 파트 타임을 구하는 광고지가 붙어있네요. 수진님은 두 눈에 힘을 주고 이 곳으로 들어가 입사 지원 서류를 씁니다. 허 참. 나는 주인님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잭 님이 밖에 가서 돈 벌러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부부싸움 하다 말고 갑자기 입사 지원이라니요? 왈왈! 수진님 알 유 오케이? 괜찮아요?

일 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주인님은 저를 데리고 제 이름의 고향 로키산 국립 공원에 갑니다. 로키 산은 만 사천 이백오십 구 피트 즉 4.3키로미터입니다. 봄의 한 가운데 오월에도 로키 산 꼭대기에는 눈이 녹지 않았네요. 산 꼭대기의 공기는 맑기도 하거니와 산소가 부족해서 물을 많이 마셔줘야 해요. 우리는 차에서 내려 산을 걸어 봅니다. 아침 햇살이 아무도 밟지 않고 하얗게 빛나는 눈위로 반짝거립니다. 야호! 멍멍! 나는 그 길 위를 마구마구 달려봅니다. 왈왈! 멍멍! 한참 달려 뒤를 돌아보니 잭과 수진, 내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걸어옵니다. 희미하게 들리는 그들의 대화소리.

“잭, 저번엔 미안했어. 나 요즘 미국 사는거 지쳐서 자기한테 짜증부린거 같아. 하지만 당신도 내 마음을 좀 읽어줘. 난 뭔가를 해결해 달라는게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이러니 좀 들어달라. 이거야.”

“오케이. 알겠어. 그렇게 해 보도록 노력해 볼게.”

“나 티제이 맥스에 지원했어. 언제까지 서울 생각하면서 오피스 걸만 꿈꾸는건 오히려 시간 낭비일거 같아. 해 보지 뭐. 이것도 경험일거야.”

왈왈! 수진 님이 좀 더 미국이라는 이 현실에 한 발 더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로키 산의 푸르른 하늘과 하얀 눈밭이 우리 셋을 포근히 감싸줍니다. 멍멍!

조소현/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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