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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칼럼]디지털 시대를 사는 자세

언론인·VA 거주

“팩스 한 대 사줄까?” 미국 출국을 앞둔 조카에게 이모가 한 말이다. “이모, 컴퓨터랑 전화기로 자주 얼굴 보여 드릴게요.” 80년대에 두 딸을 미국 유학 보낸 이모와 2010년대에 미국으로 떠나는 조카의 대화다. 이모의 기억 속에서 이민 필수품은 팩시밀리(FAX)였다. 비싼 국제전화를 대신해 빠르고 쉽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던 그 시절 최고의 통신수단이 팩스였다.

너무 옛날얘기라고? 불과 십 년 전 이야기다. 그 자리를 어느새 컴퓨터와 스마트폰 채팅이 대신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지금에서야 스마트폰 없이는 생활할 수 없지만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전화기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 꿈 같은 이야기였다. 가까운 미래에는 과연 어떤 혁명이 일어날까 궁금해진다.

생각해보자.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것들이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을 때 사람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사람이 탄생시킨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생활을 모조리 바꿔놓았듯이 기술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다음 인간’(사진)에서 이나미 박사는 ‘욕망도, 인간도, 관계도 사라진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

책에서 그려지는 다음 인간의 모습은 삭막하다. 사람들은 성공하려는 욕구가 없고 어떤 일에도 쉽게 감동을 하지 못한다. 타성에 젖은 채 살아간다. 사이코패스 범죄가 빈번하며,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번져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간관계 또한 변하는데, 핏줄 중심의 가족주의는 옅어진다. 기계가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사람은 소외된다. 이 같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비집고 종교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다.



더 끔찍한 것은 책에서 말한 ‘다음 인간’이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공 욕구를 잃고 타성에 젖은 모습은 삼포 세대(결혼, 연애, 출산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연상시킨다. 결혼과 출산이 줄어드니 당연히 가족주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카 바이러스나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이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다음 인간’에서 묘사한 세계는 ‘다음’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우리 생활을 편안하게 해줄 신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데 행복지수가 낮아지는 이유는 뭘까? 쉽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를 예로 들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속 친구들은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만 먹고, 깨가 쏟아지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들의 편집된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부러움을 넘어 나는 “왜 이럴까”하는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기 일쑤다. 앉은 자리에서 손끝으로 정보를 불러들이는 편리한 디지털 시대를 누리는 것 같지만, 그것이 진짜 편리한지 생각하게 된다.

분석 심리학을 연구한 이나미 박사는 바로 이런 모순 때문에 ‘미래학’과 ‘심리학’은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젊은이들은 패기를 잃었고 노인들은 여유를 잃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물론 정치나 경제의 구조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이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빈부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신자유주의가 세습자본주의로 정착되는 현실에서 국가가 큰 틀에서 개혁해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자는 의미이다.

책에서는 생각할 거리만 잔뜩 던져줄 뿐 결국 아무런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음 인간의 모습이 이러할 것이니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식의 어쭙잖은 조언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나와 다음 세대를 냉정하게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그려볼 것을 주문한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을 2017년형으로 고쳐봤다. ‘디지털 회오리 시대에 살아도 흔들림 없이 나에 집중하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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