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498] 밤의 노래 -이운진

밤의 노래

-이운진


햇살이 없으면 나는 조용하다
한숨이 없으면 나는 조용하다




풀잎 위의 그늘이 무슨 색인지 잊으면
새가 날던 그날의 수평선을 잊으면
나는 조용하다


당신의 집 식탁 아래 고양이 울음소리
앙갚음으로라도 만지고 싶은 당신 눈빛이 없다면


그런 가슴 한쪽과 독한 이름 하나가 없다면
나는 정말 조용하다


기억 속의 어디서건
혼자 되돌아오는 내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


진짜 밤다운 밤이면
나는 비상구처럼 조용하다


우리는 상처를 만드는 사람이면서 치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상처를 받은 사람이면서 자신을 힐난하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바친다. 시인의 작품(말) 속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담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그 사람 안으로 담기고, 그 사람의 모든 것에는 그 사람의 그 사람이 담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어서 말끝은 조용하다.

우리는 언제 조용한가. 햇살 없으면, 한숨과 회한 없으면, 후회 모르거나 없으면, 풀잎과 그 그늘, 그 빛깔이 무슨 색인지 잊으면, 새가 날던 지평선을 잊은 듯, 우리는 조용해진다. 자신을 노려볼 수 있는 너의 눈빛이 없으면, 정말 조용해진다.

내가 걸어온 길, 왔던 길, 했던 일, 그 길 어디선가 되돌아오는 내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 그 시간은 밤이다.

진짜 밤다운 밤이 오면 그때 그곳엔 나갈 수 없는 비상구가 되어 그냥 그곳이 멈추어지는 곳, 그렇게 그냥 조용해지고 만다. 언제나 어둠과 함께 오는 곳, 그곳은 밤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