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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카르페 디엠과 상투 묫자리

김준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말은 원래 호라티우스의 시 구절에서 발췌, 사용되다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라틴어 경구이다. ‘carpe’는 ‘잡아뽑다’ ‘사로잡다’, ‘diem’은 ‘dies’에서 변화된 것으로 영어 ‘day’에 해당한다.

그래서 ‘seize the day’, ‘pluck the day’ 쯤 옮길 수 있고 우리말로 ‘하루를 충일하게’, ‘현재를 즐겨라’로 의역한다.

해를 넘기며 또 다른 해를 맞았다. 매해 겪지만, 지난해도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다. 태평양 이쪽과 저쪽 모두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일이 벌어졌으나, 우리의 일상이 크게 바뀌거나 엎어지지는 않았다.

암 선고를 받은 우리 이쁜이 집사님은 여전히 투병 중이시고, 얼마 전 아들 결혼시킨 친구도 할머니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처럼 눈 오는 날 호젓한 정취에 젖어 불 밝힌 창가에 성기게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다본다.
 


예전 그날도 문틈으로 떨어지는 거위 털 같은 눈송이를 망연히 바라보는데 “에구! 내가 못살아 상투가 있나 죽어 묫자리가 있나”하고 들려오는 친정엄마의 목소리에 내심 못마땅해했다.

묫자리 운운하는 걸 보니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그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김장을 마친 엄마가 허리를 펴며 “휴!” 하고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내 귀에 거슬리는 상투며 묫자리 등이 까닭 모르게 불길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괴팍스런 생색을 부린다 여겼던 것 같다. 엄마의 나이가 청상도 아니었고 생각해보면 채 오십이 안 된 과부로서 무슨 허연 할머니처럼 굴던 청승이 아마 고까웠던 것 같다.

왜 그렇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부재로 세파를 헤쳐나갈 보호막 같은 상투가 없었고 바람막이라도 해야 할 남동생은 둘씩이나 군대에 묶여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뒷수습의 막연함이 엉겨 붙어 저절로 떠오르는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본인에게 닥친 뻔한 애로가 김장이라는 육체노동과 맞물려 특유의 한풀이로써 시골 아낙을 흉내 내 불쑥 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이 흔히 그랬듯 푸념하듯 뱉어냄으로써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자기의 봇짐으로 인정하고, 스스로 요구되는 각오와 다짐을 다잡는 벼랑끝 전술이나 배수진 같은 것일 터였다. 그걸 내가 모른 체 했다. 그때 김장을 마치고 유창하게 ‘카르페 디엠’을 외쳤어도 어쩌면 나는 그런 엄마가 또 다른 이유로 곱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카르페 디엠’이든, ‘살아 상투가 있나 죽어 묫자리가 있나?’ 가 되었건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극과 극은 통하는 것처럼 문화적 표현이 달라 그렇지 본질에서 같은 뜻의 서로 다른 소릿값이라고 보아야 옳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세상엔 좋은 학교 나오고 언변 좋은 사람들도 꽤 많아 세상일에 일가견하고 이른바 ‘포 뜨고 회 치는’ 이들이 제법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내 일상과 생계를 거들리 만무하니 내 생계는 수상쩍은 시절일수록 내가 감당하는 것이 온당했다. 델리에서 토마토를 썰건, 세탁소 옷걸이 밑에서건 일용한 양식과 거룩한 생계는 나로 인해 계속되므로 잘난 그들과 견주어 초라할 이유가 없었다.
 
들에 있는 다람쥐도 공중 나는 새도 다 그렇게 사는 것처럼 이 신산스런 보급투쟁에서 우리는 모두 다 영용한 전사라고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것이 처절한 각오에서 뿜어져 나온 좌절로 의뭉스럽게 뱉어낸, ‘살아 상투가 있나 죽어 묫자리가 있나?’ 그렇게 떠는 능청이든, 유려하게 외쳐댄 카르페 디엠이건 양쪽 모두 이 개별적 삶을 통째로 스스로가 책임진다는 말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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