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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 650]커피 없이 가는 길

혼자만의 가슴앓이가 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나도 해결할 수가 없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수없이 자문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 아침도 갓 구운 도넛을 욕심껏 담아들고 나오면서 스타벅스 커피 코너를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진열해놓은 커피 머그를 아쉬워하며. 이런 아침이면 제일 부러운 사람이 커다란 커피 컵을 들고 나와 차문을 여는 여자다. 차의 시동을 걸어놓고 한 모금 마실 때의 기분이 어떨까? 천국 같겠지.

‘매혹과 잔혹의 커피 사’를 쓴 펜더그라스트는 “커피 한 모금에 피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고, 굵은 첫맛, 쌉쌀한 뒷맛...”이라 쓰고 있었다.
나도 커피를 마셨던 때가 있었다. 대학 시절, 그때 다방커피가 정말 커피였을까 하는 의심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땐 커피가 귀하고 비싸서 톱밥 볶은 걸 섞어 끓인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었다. 어쨌든 미국 온 다음 날 길 건너 7-11에 혼자 가 겁 없이 먼저 집어든 것도 커피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커피를 입에 댔다하는 날은 날밤을 새야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마셔보라는 친구의 말에 그렇게 해보았다. 그것도 그랬다. 궁여지책으로 맛없는 디켑으로 바꾸어 보았다. 이 얘기를 들은 LA의 사촌오빠, “디켑이 얼마나 나쁜건지 모르느냐?” 며 야단을 쳤다.
이제 나는 커피를 안 마신다. 아니 못 마신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오늘 아침처럼 그이와 아들이 에스페레소 한 잔에 도넛을 먹을 때는 못 본체 고개를 돌리고 그들이 내뿜는 냄새만 마신다. 세상에 궁합, 궁합 해도 도넛과 커피 같은 궁합이 어디 있으랴. 크림이 든 초콜릿 도넛도 나는 맹물하고 먹어야 한다. 억울하다. 저녁식사 끝에 커피를 마셔도 잠만 잘 온다는 사람의 얼굴을 나는 보고 또 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잠도 잠이지만 커피를 마신 날은 속이 쓰리고 아팠던 기억도 있다.



한참 젊었던 20대 중반, 내 맥을 짚어 본 단골 한의사 할아버지 첫마디에 “커피하고 계란은 당신에게는 독이요!” 했다. 그래도 젊었을 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또 그이와 다방에서 만나면 커피부터 주문했었다.
미국 와서 오기로 커피와 계란을 함께 먹어본 적 몇 번 있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죽을 것만 같았다. 지난 주 장을 보다 오래 전 내 고객이었던 사람을 만났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아내는 60세도 되기 전 기억력을 잃어 양로원에 있다며 남편이 누군지, 아이가 몇인지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다.
아! 생각난다. 그의 아내는 나처럼 작았고, 매일 커피 8팟, 담배 3갑, 위장약 ‘메일락스’ 2병을 먹었고, 하이힐만 신고 다녀 발 의사를 매주 찾아야 했단다. 너무 많은 카페인과 니코틴은 사람의 기억을 빼앗나 보다. 그런데 뒷집 미스터 훼치나는 하루 16컵이 기본이라며 내게 커피 찬양론을 펼치면서 승승장구 거부가 되어가고 있다.

어제 신문을 보니 커피 값이 또 오를 모양이다. 아무리 값이 올라도 마시던 사람은 마셔야 되겠지. 이제 세상은 커피 없이는 힘들 것 같다. 내 아이들은 내 체질을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사는 맛, 그 짜릿한 외도를 아이들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그는 커피 마셔도 괜찮다. 커피광은 아니지만. 그에게 커피를 줄 때 한 수저 삥땅을 한다. 나 참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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