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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어화둥둥 내 사랑

커다란 서점에 들어섰다. 백일 되는 손녀에게 선물로 줄 소리 나는 그림책을 찾아 달라고 주문했다. 기다리다 보니 유아 코너에 별별 게 다 있다. ‘그림책만 고를 순 없지!’ 욕조에 띄우는 장난감과 이유식 그릇까지 사고, 혹시 바꿀지 모를 때도 대비해 현금으로 계산해서 영수증도 선물에 같이 넣었다. ‘역시 나는 준비된 고모할머니야.’ 기세등등하게 서점을 나와 가슴 설레며 조카 손녀를 만나러 나섰다.

그런데 아기는 만나기도 전에 양가 식구들의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요즘은 신생아 만나려면 직계가족은 감염을 막는 예방주사를 맞아야 된대요.” 그 말에 “별 유난이네. 뭔 주사?”라고 되받아치면서도 어느새 온 가족이 예방주사와 독감 주사까지 양어깨에 맞고 있는 거 아닌가. 주사와는 거리가 먼 남편도, 할아버지가 된 남동생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모두가 끽소리도 못하고 긴장된 얼굴로 꾹꾹 참으며 주사를 맞는데 그나마 식구가 아홉이니 다행이구나 싶다. 그렇게 30년 만에 우리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 서열 1위, 실세 1위가 됐다.

아들이 결혼했다. 그런데 귀하게 여기던 아들이 점점 어려워지더니 이제 며느리 남편이라 부르게 된 것마저 서운하던 찰나, 아기가 태어났다. 부랴부랴 주변 친구들을 수소문해 요즘 쓰는 개량 기저귀와 포대기, 배내옷을 한국에서 공수해 바쳤더니 요즘은 그런 거 잘 안 쓴다며 아들이 퉁을 준다. 또 며느리는 산후조리를 해준다는데도 극구 사양한다. ‘남들은 산후조리해줄 사람 못 구해서 난리라는데 참 별나다’ 싶다.

아들은 산후조리하느라 날이 갈수록 눈이 퀭해지고 얼굴엔 버짐까지 펴서도 웃는데 세상에 그런 팔불출이 따로 없어 보인다. 손목엔 파스까지 붙여서 애를 손수 씻기고 밥상을 차리고 밥도 대충 서서 먹고,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생선이랑 식혜를 해가니 마누라가 비린 것과 단것은 별로라고 했다며 마누라가 좋아하는 닭죽과 담백한 잔치국수를 주문한다.



아이고야! 집으로 오는 길에 신세 한탄을 하니 남편이 말한다. “당신은 힘들 때 누가 옆에 있는 게 제일 편하냐”라고. 나는 “두말 없이 당신”이라고 대답하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돌이켜 생각하니 남의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늘 시댁에 가면 “너는 얼굴이 좋은데 철이는 왜 이리 말랐냐”라며 나날이 통통해지는 나를 쳐다볼 때는 정말 난감했다. 밥과 물만 먹어도 살이 붙는 나와는 달리 밥에 빵, 과일, 과자,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까지 골고루 먹어도 살이 붙지 않는 남편인데.

아들이 처가살이하며 돈을 모아 몇 년 뒤 분가하겠다고 했을 때도 서운했는데, 그것도 생각해보니 다를 바 없었다. 시댁인 부산에서 제일 먼 서울 친정집 옆으로 이사와 친정살이하다시피 살았으니.

‘며느리’. 생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예쁘게 사랑하고 결혼해서 건강한 아기를 순산해 준 ‘내 아들의 여자’. 이제 우리가 모두 사랑하며 사는 만큼 새로 탄생한 아기도 사랑받으며, 사랑하며, 또 사랑을 나누며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랄 수 있게 어른스레 살아야지.

박명희/VA 통합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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