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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칼럼]산사(山寺)의 셈법

김준혜

확실히 남자들의 뇌는 주인이 겪은 참혹한 기억을 소극적으로는 망각, 적극적으로는 왜곡이라는 방법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어기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흔히 한국에서 혹독한 군시절을 보낸 남자들일수록 한결같이 그때를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여 술자리 등에서 우쭐한 마음으로 추억을 토로하는 것이 좋은 예다. 정황상 처참했음이 분명한데도 그러면 너무 스스로가 초라해지기에 그때 겪은 굴신이나 비굴은 무슨 대단한 용기와 무용담으로 윤색돼 우리의 뇌는 쓰라린 기억을 하나의 신화와 전설로 빚어놓는다. 그러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허세 진득하게 꺼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 같은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이에 반해 여자들의 뇌는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당한 수모를 실제보다 훨씬 부풀리고 키워 두고두고 곱씹고 기억하여 스스로 확대재생산의 과정을 거쳐 이윽고 한이 서리는 되먹임 현상을 하는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한 후에도 “네 아버지가…”로 시작하는 엄마들의 장광설이 바로 그것이다. 종종 순교자들이 겪게 된다는 어떤 피학적 열정 같은 것이 퍼렇게 서려 있다. 둘 다 모두 스스로 생존을 염두에 둔 행위겠지만, 구체적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달라 이들이 과연 종을 같이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맞을까 하는 강한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데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스님들의 명상이야기다. 동안거, 하안거를 통해 화두를 부여잡고 심도 높은 명상과 수련을 하는 동안 스님들의 뇌 속에서 흔히 다스림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전기장치의 의도된 오류와 착란, 흔히 마음 단련과 힐링이라는 과정을 좋은 의도로 발칙하게 역이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었다.
 
삶의 만족도를 계량화하면 실현된 성취를 분자로 하고 바람과 기대치를 분모로 한 나눗셈의 몫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실현된 성취가 있어도 워낙 분모의 기대치와 바람이 크다면 그 나눗셈의 몫은 작아질 수밖에 없어, 결과는 턱없이 작아져 족함이 없고 족함이 없으니 우리의 행복지수는 낮아진다. 이를테면 야심 찬 세계 1위가 아깝게도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놓친 후 낙담한 은메달리스트가 될 때 종종 보여주는 모습이 실망과 좌절로 점철된 억울함인 것이 여기에 있다. 반대로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기뻐 날뛰는 동메달리스트의 이유이기도 하다.
 


성취의 구체적 형태인 소유로만 본다면 이 지구 상 70억 인구 중에서 세계 최고 부자 85명의 재산총액이 꼴등에서부터 따져서 전 세계 35억 명의 재산 총액보다 많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것을 안다면 눈이 뒤집힐 일이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라면, 꼭 꿈의 하향조정이라고 몰아붙일 게 아니라 차라리 분자인 성취는 팔자대로 그냥 놔둔 채 바램과 기대치를 한껏 낮춘다면 그래서 거의 0에 수렴한다면 그 나눗셈의 몫은 무한대로 커짐을 노려볼 만도 하다. 그것이 곧 수량화된 안빈낙도의 본질이며,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요, 흔들지 않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아닐는지….
 
그리하여 비록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온전히 내 몫의 뇌와 마음을 키질하여 다스리는 한 그 족함의 체험을 허접스러운 우리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나는 믿고 싶다.

나이 들면서 마음공부니 수양이며 자기 가치의 설정 등, 삶의 철학 따위가 다름없이 모두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스님과 신부들이 토굴과 기도실에서 마냥 하는 연습이 바로 그런 것일 거라는 은근한 확신이 든다. 설사 그게 아니라도 이 타국의 겨울에 눈 내리는 산사를 회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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