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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칼럼]우리는 숨을 거두면서 무슨 말을 남기는가?

허종욱

1910년 11월 20일 추운 겨울날, 시베리아 벌판 아스타포보라라는 작은 시골 간이역, 한 나무의자에 누워 신음하는 노인, 역장 집으로 옮겨져 일주일간 간호를 받았지만, 82세로 숨을 거둔 노인은 바로 유명한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였다.

아내에게 들킬까 봐 잠든 사이 몰래 10일 전에 가출한 톨스토이는 ‘나에게 아내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라는 충격적인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남편의 응급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내는 남편의 임종을 끝내 못 보고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람들은 숨을 거두면서 마음속 깊이 묻어 둔 꼭 하고 싶은 말을 남기고 떠나게 마련이다. 톨스토이는 아내가 얼마나 모질게 괴롭혔으면 하고많은 유언 가운데 구태여 아내를 질타하는 말로 생을 마쳤을까? 그가 그렇게 부르짖었던 기독교적인 용서와 사랑을 아내에게는 왜 베풀 수 없었을까? 이중적인 인격으로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내가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좋아하면서도 이런 점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신실한 믿음을 갖지 않은 보통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숨을 거둘 때는 자기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다.



더구나 평생을 살아온 부부간에는 살아온 길이 아무리 가시 길이라 하더라도 용서와 사랑을 남기고 떠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많은 경우 세상을 떠나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미워하기보다는 자신이 떠나면 누가 자신이 베풀어 준 사랑을 채워줄까 하는 안타까운 맘으로 눈 감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종종 본다. 며칠 전 한편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깊이 슬프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물한 두 장면을 보았다.

지난 3일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독자 칼럼 ‘현대식 결혼(modern Love)’에 실린 동화작가 에이미 로젠타의 에세이 ‘내 남편과 결혼해보세요’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감동하게 했다. 에이미는 숨을 거두기 전 사랑하는 남편에게 가장 적합한 짝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는 자기가 누려왔던 ‘러브 스토리’가 다른 여자를 통해 이어지기를 소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글을 발표한 후 열흘째 되던 날 51세로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뒤로하고 26년간 행복했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2015년 9월 난소암 판정을 받은 에이미는 생의 마감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고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을 그냥 두고 가기에는 너무 아깝게 여겨졌다.

에이미는 남편을 이렇게 소개했다. 동갑내기 제이슨을 24세 때 만나 결혼, 그동안 행복과 행복만이 연결되는 사랑의 파노라마를 엮어왔다. 변호사인 남편은 키 5피트 10인치, 몸무게 160파운드의 균형 잡힌 체격, 잘생긴 얼굴에 시대 감각을 잘 맞추는 멋쟁이, 취미로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아마추어 화가에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고상한 품격, 여행을 즐기며 요리에도 뛰어날 뿐 아니라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자상한 남편,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더 할 수 없이 좋은 아빠이다.
일리노이주 미란이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던 사라 한킨스는 지난 13일 36세의 나이로 4명의 자녀를 남겨놓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라는 혼자 살아오면서 외국에서 아이들을 입양해 기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서 지금은 큰아들 알렉스가 18살, 둘째 11살, 셋째가 9살, 그리고 막내는 8살이 되었다. 사라는 이렇게 잘 자라 준 자식들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을 두고 눈을 감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 어느 날 미장원 직장 동료 미시 암스트롱(42)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처지가 같은 둘은 늘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지내오는 사이였다.

혼자 사는 미시는 소원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사라는 10일 후 세상을 떠났다. 미시는 사라가 두고 간 4명의 자녀를 입양, 자신의 자녀로 기르고 있다. 미시는 하나님이 사라를 통해 귀한 자녀를 선물로 안겨준 것으로 여기고 늘 감사하고 있다. 사라가 그동안 지녀 온 자녀들과의 ‘러브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숨을 어떻게 거두었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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