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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재클린 뒤 프레

20세기 대표적 여류 첼리스트
불치병으로 음악·사랑 다 잃어

20년 전 필자가 엘가 협주곡을 배우던 시절, 스승의 추천으로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1987)의 음반을 듣게 되었다. 엘가 협주곡 1악장의 구슬프게 아름다운 첼로 선율, 2악장의 빠르고 민첩하면서도 정확한 테크닉, 3악장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미적인 멜로디, 4악장의 당차면서도 활기찬 에너지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엘가 협주곡의 정석과 같은 연주였다. 이것이 비운의 첼리스트 재클린과의 첫 만남이었다.

재클린 뒤 프레는 영국 출신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류 첼리스트이다. 영국 옥스퍼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4세에 라디오에서 들리는 첼로 소리를 듣고 부모를 졸라 첼로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5세의 나이로 런던 첼로 스쿨에서 본격적으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재클린의 부모는 더욱 열성적으로 교육하였다.

그녀는 1961년 런던에서 화려한 데뷔를 한 후 유럽 각지에서 저명한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하였으며, 1965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미국 데뷔를 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류 첼리스트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폴 토틀리에,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하고 파리 고등 음악원에서 공부하였으며, 엘가 협주곡을 담은 EMI 음반을 시작으로 수많은 명음반을 발매하였다. 런던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저명한 오케스트라와 다니엘 바렌보임, 주빈메타, 레오나드 번스타인, 아드리안 볼트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호흡을 맞추며 그녀 내면의 음악을 관객들과 소통하는 연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1966년 음악계의 샛별로 자리매김하던 때,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랑에 빠졌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클린은 유대교로 개종하면서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두 명의 최정상급 음악가의 결합은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여러 연주를 통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행복도 잠시뿐이었다. 재클린은 1971년부터 자주 쓰러지고 기억력이 감퇴했으며 온몸이 서서히 굳어가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녀의 병은 자가면역이상으로 신경 통증과 함께 마비감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완치율이 낮은 질병인 다발성 경화증이었다. 1973년 한참 성공을 바라보던 나이 27세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그녀가 몹시도 사랑했던 악기를 더는 연주할 수 없었다. 금세 회복될 줄 알았던 이 무서운 병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젊은 나이에 불치병에 걸린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연주할 수 없다는 절망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가족만 남아있었다. 많은 사람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잊혀 가는 것 또한 그녀의 마음을 짓밟았다.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 바렌보임도 다른 여자와 동거하며 이혼을 요구했다. 눈물겨운 오랜 투병 생활 끝에 그녀는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올해는 재클린 뒤 프레가 사망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아름다운 미모의 첼리스트. 그녀의 연주 활동은 비록 10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곡을 연주하며 많은 음반을 남겼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연주자로서 화려하게 데뷔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난치병으로 긴 시간 투병하며 생을 마감하고 사랑했던 이들에게 모두 떠나는 마지막을 보냈던 재클린. 그녀의 음악이 왠지 모르게 더 구슬프게 느껴진다.


이영은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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