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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부시와 트럼프, 사담 후세인과 김정은

공습 89개월. 드디어 미국이 바그다드를 향해 결별을 고했다. 마지막 전투여단 2000명이 섭씨 50도 열사의 땅을 빠져나왔다. 참 기구한 역사의 한 장이었다. 2003년 3월20일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다며 시작한 전쟁. 미국은 역사적인 세계경찰국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려 했던 것이다. 드디어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부시 대통령은 종전을 선포했다. 그러나 종전 선포 후 더 많은 병사가 죽어간 사막, 끝이 났어도 끝나지 않은 전쟁, 꼭꼭 숨어버린 사담 후세인을 찾는 일이 미궁에 빠져들고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맥이 빠져가는 듯했다.

금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던 움베르트 에코가 27년 전에 쓴 한편의 글 속에 사담 후세인을 수식했던 말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메소포타미아의 뱀처럼, 알리바바처럼 교활한, 천일야화의 등장인물처럼 머리가 좋은, 마호메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로크처럼 재빠른, 사막의 기사처럼 교묘한’ 등등. 에코는 길지 않은 한 편의 글 속에서 사담 후세인을 이렇게 수식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담 후세인도 인물이었지만, 에코도 인물은 인물이었다. 한참 잘 나가고 있는 서슬 퍼런 남의 나라 통치자를 향해 이런 말들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눈이 정확한 비평가였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드디어 사담 후세인을 체포, 법정에 세웠다.

걸프전에서 반 후세인적인 행동을 했다며 수천 년 살던 땅에서 쫓겨났던 쿠르드족 판사 앞에 세워졌다. 에코의 말대로 머리 좋은 사담 후세인도 신이 만들어 놓은 함정을 피하지는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바빌론 수염만은 여전히 위엄 있어 보였다.



바빌론 수염, 그것은 기원 수천 년 전부터 신의 보장을 받은 용기와 용맹, 권위의 표상이었다. 투표일의 바그다드. 모든 길은 봉쇄되고 미군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투표자들의 긴 행렬을 지켜주고 있었다.

투표소 입구에 걸려있는 포스터에는 “두려움에 떨며 살지 마십시오. 테러리스트에 관한 정보가 있으면 당신은 보상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투표가 이라크와 국민의 미래를 결정할 겁니다. 투표는 아주 훌륭한 일이지요” CNN 기자 앞에 선 그들의 말이 전파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아. 어젯밤 한숨도 못 잤어. 여기 와서 투표한다는 생각에. 신은 수니파든, 시아파든, 쿠르드족이든 상관없이 모든 이라크 사람을 구할 거야. 우리는 모두 이라크 사람이야. 한 민족이란 말이지” 노파의 말에 손뼉 치던 그들. 이란과의 전쟁 이후 자신의 명령을 어기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장교건 사령관이건 식사 당번이건 그 자리에서 권총을 꺼내 즉결처분하기를 서슴지 않던 사람. 후세인에게서 벗어나 처음 해보는 투표, 그들에겐 꿈이었을 것이다. 이상은 모두 실제로 지구 위에 있었던 일이다. 저 중동에서.

역사는 같은 일의 반복이라는데 이런 일이 북한에서 재현되면 어떨까? 이보다 더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을까. 김정은이 사담 후세인이 되고, 북한 주민들이 투표소 앞에 줄을 선다면…. 가슴이 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시 같은 결기가 있을까? 에코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할까?


김령 / 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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