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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뉴욕 나들이

내가 강의를 듣고 있는 벧엘교회 시니어 아카데미에서 단체로 가을 단풍여행을 뉴욕으로 정했다기에 무작정 동참했다. 처음 가보는 곳은 아니나, 그곳은 젊은 날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추억의 도시이다.

거리에는 햇살을 가리우는 수많은 고층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다. 이따금 보행을 방해하는 철조물 들은 낡은 건축물을 보수하느라 불편을 감수하게 만든다. 맨해튼을 가장 뉴욕답게 만들기 위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곳에는 더는 새로운 고층 건물은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일 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들락이는 명소들을 몇몇 둘러 볼 겨를도 없이 짧은 시간을 이용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한편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관광버스로 시가지를 돌아보지만 언젠가 남편과 함께 맨해튼의 높은 건물들 사이를 동서로 가로질러 다리가 아프고 눈이 시리도록 걸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 펼쳐진 야시장의 전경은 잊을 수가 없다. 한낮에 바라본 부의 상징 마천루만 생각했지 삶의 살벌한 현장을 재현해낸 이민자들의 빈곤한 모습이 야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부와 빈곤은 서로 얽혀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 여행 마지막 날 빠뜨릴 수 없는 한 건물 앞에 섰다. 생각만 해도 섬뜩하고 비극적인 월드 트레드 센터. 누가 이곳을 그라운드 제로라 했던가.



1977년 한겨울 어느 날 두 아들에게 쌍둥이 빌딩을 보여주기 위해 110층의 스카이라운지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네브래스카의 시골에서 왔다는 어느 중년 여인의 말이 떠오른다. “너무 밋밋한 성냥갑 두 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뉴욕의 시가지 전경을 흐리게 할까 걱정스럽네요.”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비극의 현장에서 새롭게 그라운드 제로로 재탄생한 건물을 마주하고 있다. 노란 국화가 만발한 길 양옆으로 올망졸망 어린아이들이 단체 관람을 위해 긴 줄로 서서 기다린다. 아름답게 하늘로 치솟은 유리 건물이 가을 햇살에 눈 부시다. 만국기를 꽂아놓은 사각형 ‘추모의 풀’을 중심으로 애매하게 희생당한 영혼들의 이름이 말없이 새겨져 있다. 그 옆으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날개를 편 채 수많은 방문객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담아 가게 하는 것 같다. 차가운 대리석 이름 위에 하얀 장미꽃 한 송이. 오늘 생일을 맞이하는 영혼을 추모하는 뜻이란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진다. 젊은 시절 한때 이 거리를 지날 때면 이렇게 배가 고팠었지. 두리번거리니 길가에 허름한 핫도그 포장마차가 보인다. 잽싸게 양손으로 사우어크라우트가 듬뿍 발린 핫도그를 사서 들고 기다리던 버스에 올랐다. 핫도그를 한입 씹는 순간 그 옛날 꿀맛이 아닌 건 나이 탓인가, 두꺼워진 뱃살 탓인가.

석양이 기우는 뉴욕을 뒤로하고 떠나는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광고 한편. 40여년 전 배꼽티를 걸치고 한 남성이 외치던 말, ”That’s the story”는 태고적 영상이지만 아마도 무수한 사연과 함께 지금도 세계 최대의 상업 도시 뉴욕을 이 몸짓 하나로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blog.naver.com/soon-usa)

이영순/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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