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문학카페]여행이 키운 감성, 시인 노세웅

“지구촌 온 세상이 내 시의 텃밭”

미국에서 한국을 갈 때도 직항으로 가는 법이 없다. 알래스카나 아프리카, 아시아 어느 나라든 꼭 돌고 돌아서 목적지에 닿는다. 그렇다고 비즈니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아서’가 이유다.

노세웅 시인은 나이 예순이 되어서야 워싱턴 문단에 등장해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활발한 문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 셈이다.

노 시인은 “어릴 때부터 책은 무척 좋아했지만 한 번도 글을 써보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며 “분주하게 두 발로 온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펜을 쥐기까지 60년을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노 시인과는 문학 이야기 이전에 여행 이야기부터 풀어봐야 할 듯싶었다.

노세웅 시인은 경북 문경 출신이다.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내밀고서야 보이는 즈음에 위치한 벽지가 고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쯤 6.25 전쟁이 났는데 그때 동네로 흑인이며 백인이며 외국 사람들이 아주 많이 들어왔다”며 “난생처음으로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바깥 세계가 궁금해지면서 나가고 싶은 동경이 들었다”고 여행을 꿈꾸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결국 그 희망 품은 욕심 덕분에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서울에 있는 체신고에 진학, 일단 고향 벗어나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고교 실습을 명목으로 목포로 빠진 뒤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체신부에 취직해 강릉, 인천, 부산, 울산, 포항 등 전국 곳곳을 원 없이 돌아다니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구로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외교관이 되어서 인도네시아와 워싱턴서 근무했고, 마지막으로 세계은행에서 은퇴한 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오대양 육대주를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런 그가 고희가 되던 해인 2012년, 느닷없이 처녀시집 『킬리만자로의 나그네』를 발간했다. 갑자기 왜, 아니 언제부터 문학과 연을 맺은 것일까? 노 시인은 “98년에 은퇴를 하고 교회 일을 맡아 하던 중 회지에 실리는 글을 쓴게 우연히 상을 받게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 나이 60에 정식 등단까지 하게 됐다”며 “이후 이 지역 문인인 최연홍 시인이 강연을 맡은 문예 창작원에 등록해 보다 전문적인 작법을 배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노 시인의 시집을 펼쳐 드니 역시나 여행 중에 만난 풍경 이야기가 첫 번째요, 그 안에 신앙인으로서의 마음 혹은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마음도 언뜻언뜻 묻어난다. ‘내가 떠나면 지구가 회전을 멈출 것 같아 떠나지 못한다’, ‘떼 지어 누운 억새풀 은빛 수의를 덮고 흔들리며 울고 있는데’, ‘기적을 행하신 부드러운 손 내 상처를 쓰다듬어 주기 전까지’ 다양한 주제로 쓴 시들과 어우러진 시구,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에서 묻어나는 영락없는 시인의 감성.
문득 본인조차 쉬이 꿈꾸지 않았던 시인의 길을 예감한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노 시인은 “문경에서 꼬마 적부터 함께 자라며 10리 길을 걸어 초·중학교도 같이 다니고, 체신고도 나란히 다녔으며, 지금까지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가 바로 유명한 시조시인 민병찬입니다. 그 친구에게 처녀시집을 냈다고 말하니 단번에 ‘너는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더군요. 아마 어릴 때 끝없이 읽은 전집이 문장력 기본이 되고, 그 위에 변화무쌍한 제 삶의 풍경을 얹어 쓴 시 덕분에 저도 모르게 시인이 됐나 봅니다.”

끝내 여행 이야기로 시작해 여행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 짓는 노세웅 시인. 그는 다음 달이면 또 한 번 감성 자극하는 시의 텃밭을 향해 짐을 꾸린다고 전했다. 만남의 끝자락. 노 시인이 챙겨와 내민 시집 첫 장을 넘기니 필력 넘치는 문장이 눈길을 휘어잡는다.

‘인생은 여행입니다 -노세웅’.






파라다이스 온 어스(Paradise on Earth)

바나나 잎 하나
우산처럼 쓰고 가는
소년

젖을 것이라곤
반바지 하나

비가 오면
야자수 나무 아래서 쉬고
그치면
일하는 사람들

피할 곳 없으면
빗물에
샤워 하는 소년

일하다 목마르면
파파야 주스 마시고
야자수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잔다.

천국과
가난한 나라는
종이 한 장 차이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