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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상 카메라로 전세계에 고발”

임성환씨, 부친 고 임인식 사진대장 회상
두 손 묶여 총살된 미군 사진에 우방 참전

 “카메라는 총보다 강한 무기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전쟁의 미군 대규모 파병을 가능케 한 것은 어쩌면 아버지가 찍어서 미국 방방곡곡에 퍼진 사진 한 장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임성환 씨가 말하는 사진은 1950년 7월6일 충남에서 두 손이 묶인 채 총살 된 미군의 그것이다. 사진은 AP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특히 미국의 주요 일간지 1면에 실리며 분노를 샀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을 비롯, 전 세계의 우방들이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을 돕고자 일제히 일어난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임성환 씨의 부친은 이 사진을 찍은 육사 8기 고 임인식(1920~1998) 중위다. 국방부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방부 소속 정훈국에 사진대를 긴급 편성해 전쟁 상황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겼고, 육사 8기였던 임 중위는 사진대 대장으로 임명돼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혹하고 처절했던 한국전쟁 현장을 촬영했다.

“아버지는 늘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조그마한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그토록 용감히 싸울 수 있었던 미군의 굳은 의지와 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고 임 씨는 말했다. 또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으로 반대편에 대한 학살과 살육이 끊이지 않았던 한국전쟁 당시 찍은 아버지의 사진들이 안보와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료로 그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했다.



불타 버린 중앙청,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 중에 오늘날 우리가 책이나 전시회에서 보는 6.25와 관련된 대부분의 자료는 임인식 씨가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 유수한 세계 언론들은 물론 자체적으로 종군기자를 파견하기도 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아들 랜돌프 처칠 역시 함께 종군했는데, 그와 함께 종군하던 8월 24일 낙동강 왜관 부근 다부동 전투에서 임씨는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 사진을 찍다가 그만 적진까지 들어가 북한군의 총탄을 맞은 것이다.

1952년 은성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임인식 씨는 대위로 예편한 뒤 대한사진통신사를 설립해 전쟁 사진을 비롯 한국의 정치, 사회상을 찍은 사진을 외국계 통신사들에 제공했다. 그가 54년부터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서울을 기록한 사진은 서울의 옛 모습과 변화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됐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임 씨의 집안은 4대에 걸친 사진가집안이다. 임석제 사진가가 그의 숙부이고, 국내 대표적인 건축사진가인 임정의씨가 장남, 사진작가 임준영씨가 그의 손자다. 둘째 아들인 임성환씨 역시 베트남 전쟁 당시 국방부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임성환 씨는 “군에 입대해 국방부 국립영화제작소의 국방뉴스 기자로 있다가 파병됐고 1970년대 초반 대한뉴스에서 나오던 월남전 정글을 누비는 용맹한 따이한들의 소식들을 취재했다"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워싱턴에 1987년 이민 왔던 아버지는 98년 한국에서 세상을 떠나셨다”며 “해마다 6.25가 가까워오면 아버지 생각이 유난히 각별하다”고 덧붙였다.


박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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