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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 미드 윌셔 지역

미셸 원 / BEE부동산 부사장
미셸 원 / BEE부동산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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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12/31 부동산 22면 입력 2020/12/30 16:22

멜로즈-10번 Fwy, 후버-라시에네가 지역
LA 한인타운 심장으로 눈부시게 발전

천사의 도시로 불리는 로스앤젤레스, 미 서부의 대표 도시이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이곳은 1781년 프란시스코파 수도사들에 의하여 건설되었고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 이름을 딴 ‘천사의 여왕’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였던 1800년 스페인 총독 베네는 북부 멕시코에 군대를 파견하여 이주민을 모집하여 그들에게 땅과 가축 그리고 연장을 지급하여 315명의 정착민이 살기 시작하였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하며 농업과 목우가 주민들의 생활의 중심이었던 LA를 포함한 일부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영토가 되었으나 1848년에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LA는 오랫동안 별 발전 없이 평범한 농촌에 불과했으나 1850년에는 1600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통합이 되고 캘리포니아도 미국의 한 주로 승격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대륙 횡단철도가 개통되어 교역의 중심이 되며 도시답게 발전하여 갔다. 그 후 20세기 초에 영화 산업이 들어오자 여행객들이 몰리며 관광산업이 시작되었고 그동안 계속되었던 석유 채굴산업도 더욱 번창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일어난 경제 대공황은 도시에 큰 타격을 주어 수많은 실업자와 타지에서 들어온 노숙자들로 도시는 원치 않는 모습으로 인구가 증가하였다.

하지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며 항공산업과 군수산업 등으로 도시는 회복되기 시작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인구가 계속 늘어나며 주택경기도 활성화되었다.

이렇게 LA는 제조업과 항공우주산업, 영화산업의 메카로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이자 아름다운 해변과 온화한 기후 그리고 많은 유적지가 몰려있어 해마다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도시가 되었다.

LA는 몇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는데 그중의 하나가 우리 코리아타운이 속하여 있는 미드 윌셔 지역이다. 이 미드 윌셔 지역은 북쪽으로 멜로즈, 남으로 10번 프리웨이 그리고 동서로는 후버길에서 라시에네가를 잇는 넓은 지역으로 주위에 미라클 마일과 행콕팍, 북서쪽으로 베벌리힐스가 맞닿아 있어 동쪽의 다운타운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

1890년대 대규모의 석유채굴이 시작되고 전차 라인이 생겨 다운타운부터 멀리 서쪽으로 산타모니카까지 연결이 되며 미드 윌셔 지역은 도시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LA에 무역항이 세워지며 미드 윌셔 지역은 지리적으로 LA의 중심위치에 있으면서 도시와 함께 성장 발전하여왔다. 이곳의 주민 구성은 1950년대 중산층 유대인들과 흑인들이 모여들어 시작되어 지금은 도시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살고 있어 다인종 도시의 표본을 보인다.

한편 1980년대 한국 이민자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며 주류사회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경제적으로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게 된다.

특별히 1992년의 폭동은 우리 동포사회에 큰 타격을 준 마음이 아픈 일이었는데 미드 윌셔 지역도 크게 영향을 받아 윌셔가를 비롯한 이 지역의 고급 오피스 빌딩에 들어있던 세입자들은 센추리 시티를 비롯한 서쪽 지역으로 모두 옮겨가 빌딩의 공실률은 올라갔다. 그러나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듯이 이 지역이 공동화되며 값이 내려가니 그동안 자본을 축적해 왔던 한인 투자자들에게 절호의 투자 기회가 되어 지금과 같이 금융과 경제의 중심인 윌셔가의 많은 빌딩이 한인들의 소유가 되었다.

▶문의: (213)505-5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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