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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마음의 산

얼마 전, 영화 '마운틴(Mountain)'을 봤다. 등산가 출신 여성감독인 제니퍼 피돔(Jennifer Peedom)의 작품이다. 제니퍼 피돔 감독은 2015년, 히말라야 등정을 도와주는 네팔 산악지대 민족 출신 안내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세르파(Sherpa)'로 이미 명성을 얻은 감독이다.

영화는 비발디, 베토벤, 쇼팽, 그리그 등의 클래식 음악 날개를 달고 노장 배우 윌렘 데포(Willem Dafoe)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산의 신비와 철학을 시처럼 읊어준다. 헬리콥터와 드론 촬영으로 세계 곳곳의 험준한 산들의 사계절과 속살을 샅샅이 섭렵하면서 빙벽과 암벽등반가, 스노우 보더, 마운틴 바이커들의 무한대적인 도전과 무시무시한 눈사태의 공포스런 모습까지 속속들이 보여준다.

윌렘 데포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산 이야기들이 산을 좋아하는 내게는 성경 말씀처럼 귀에 쏙쏙 저장된다.

산은 마음의 산이다. 꿈과 희망의 산이다. 산은 움직인다. 산은 여러 세대를 거쳐 솟아올랐다 내려앉았다 한다. 지구의 교향곡이다. 융기와 침식으로 이뤄진 리듬은 물로 이뤄진 물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로 이뤄진 물결을 만든다. 이 돌로 만들어진 물결로부터 생명이 흘러나온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경험을 지닌 채 산은 희미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시간은 당신 위로 지나쳐간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정신을 담금질하고 우리의 거만함에 도전하며 우리를 다시 경탄하게 만든다. 우리에겐 그들의 야성이 필요하다.

산은 우리의 사랑을 구하지도 않고 우리의 죽음을 원치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어떤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태초에 산을 신과 동일시했던 인류가 불이 생겨나며 힘이 생기고, 산을 점점 관찰하면서 가까이하게 된 역사적 변천사도 흥미로웠다. 인류의 역사에서 자연의 신비는 사실 신의 영역이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다른 영화 '끝에서 시작되다(Same kind of Different as Me)'를 보면서 '마운틴'과 오버랩 시키며 공감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는 부부간의 불화를 극복하기 위해 노숙자 보호소에서 봉사를 시작한 크리스천 부부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인데, 극 중에서 주인공이 "우리가 부자든 가난하듯 또 중간쯤이든 우리는 모두 집 없는 이들입니다. 집을 향해 가는 중이지요"라면서, "신은 쓰레기를 보물로 바꾸는 재활용 사업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베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를, 집을 향해 간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신이 쓰레기를 보물로 바꾸는 재활용 사업을 실행한다는 대목은 신선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이 베푸는 것이란 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산을 생각한 것이다. 늘 베푸는 자는 신이 아니신가. 아니, 바로 산이 아닌가. 그러므로 마음의 산은 꿈과 희망의 산이요, 신은 우리의 영원한 목자이신 것이다. 두 개의 영화를 통해 신의 존재를 더 깊이 느끼고, 신께 감사 드리는 시간이 주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4월도 어느새 반 고개를 넘어섰다. 어느 시인이 눅눅한 팔자일 랑 햇볕에 널어 말리라던데, 엊그제 접 지른 발목이 낫기만 하면 산으로 정 주행 할 작정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산길 귀퉁이에 손톱처럼 작은 얼굴을 소롯이 내미는 오랑캐꽃이며 요염한 연둣빛으로 작은 손을 흔드는 새순들이 얼마나 고혹적일까. 상상만 해도 기쁘다. 인간 능력의 극대화를 시험하는 험준한 봉우리에의 도전도 멋지지만, 작은 산에서도 우리는 가슴에서 무한한 희열이 꿈틀거리는 자연의 비밀을 채집할 수 있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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