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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치유하는 법

친구 소정이의 카톡 프로필엔 이런 말이 써 있다.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 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이 메시지에서 아직도 친구가 슬픔 속에서, 그런 자신을 위로 하려는 암묵적인 자백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소정이는 일년 전 부활절 때쯤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지금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소정이 남편은 인물이 출중하고 노래 실력과 끼가 아이돌 저리 가라 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소정이 남편이 달라졌다. 소정이와 일년 내내 거의 여행만 다니고 모범적인 가장으로 변모해서 둘만의 신혼 같은 삶을 보냈다. 그런 남편이 뇌출혈로 갑자기 떠난 것이다.

슬픔을 나눈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같은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 않았을 때는 자칫 위로가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술과 함께 지내는 소정이를 지난 가을에 열 명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캐나다 퀘백으로 불러냈다. 밖에서 어울릴 때는 그런대로 융화하던 소정이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북적거리는 소음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우리는 아픔을 감추고 꽁꽁 싸매기보다 끌어내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서로의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했다. 죽음이라는 상처를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순리 현상처럼 대낮의 햇살 밖으로 내놓은 것이다.

자식이 없는 현미가 자신한테 귀중품과 통장에 잔고가 많은데 죽으면 남겨줄 사람이 없으니, 친구들에게 그걸 다 주겠다고 한다. 우린 서로 나에게 남겨주면 장례 잘 치러 주겠다고 하며 또 깔깔거렸다. 우리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공정하게 하기로 했다. 열 명이 한 명의 승자를 만들기는 힘들었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시간 만큼은 소정이 얼굴에서 짓눌린 생기와 웃음이 보였다. 다음날 비가 오는 올드 퀘백을 구경하다 장대비를 피할 겸 성당에 들어갔다. 때마침 미사 중이었다. 친구들은 출입문에서 소낙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고 천주교 신자인 나는 뒷 쪽에서 미사에 참여했다. 조금 있다 친구들이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 왔다. 난 소정이가 오른쪽 제대 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지라 소정이를 그쪽에서 기다렸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소정이가 눈에 눈물을 매단 채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정이는 이 잠깐 동안 하느님을 통해 남편을 만나고 왔음을 알았다. 천주교 신자인 남편과 개신교 신자인 소정이가 평생을 자신의 종교를 고집하면서 상대방의 종교에 융화하지도, 그런다고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지도 않음을 잘 안다. 그런 소정이가 먼저 보낸 남편에게 어떤 회한이 밀려올지 소정이의 창백한 눈물방울이 모든 걸 말해주었다.

퀘백으로 가는 길은 LA에서 온 소정이와 선희, 플로리다에서 온 연미와 넷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혼자였다. 혼자 9시간을 운전하고 오면서 많이 웃고 또 울었다. 성당에서 나오던 소정이의 눈물이 자꾸 따라와서 함께 울었고, 친구들의 깨알 같은 따뜻한 배려에 웃었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박완서 선생님이 누구의 위로로도 치유되지 않았는데 동병상련인 박경리 선생님을 만나고 치유를 받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부족하나마 우정이라는 화학반응으로 친구를 슬픔에서 건져 보고자 했다. 현미 사후재산관리 게임에서 두 번씩이나 그 어려운 걸 이긴 사람은 소정이었다.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가위 바위 보에서 우린 다 소정이에게 지는 우연한 행운을 가졌다.


이원경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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