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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내가 겪은 LA 4·29 폭동

지금부터 26년 전인 1992년 4월 29일에 일어난 LA폭동 사태를 나는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겪었다. 이 폭동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안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 저변의 여러 문제점 들을 볼 수가 있었고 또 우리 한인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이 LA 라는 거대한 인종혼합 도시의 복잡한 내면도 볼 수가 있었다.

이 폭동은 인종 다원주의의 문제점과 과거 노예제도의 후유증이 아직도 미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인종 간 갈등과 일부 백인들이 갖고 있는 섣부른 백인 우월주의 의식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노출한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LA폭동의 원인 중 하나는 그 일 년 전에 일어난 흑인지역 엠파이어마켓에서 일어난 한국인 주인 두순자 여인의 흑인소녀 총격 살해 사건이다. 또 다른 하나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 LAPD 경찰관들의 로드니 킹 폭행사건으로, 그 재판이 백인 동네인 시미밸리로 옮겨져 4명의 경찰관 중 3명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 빌미가 되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동사태는 순식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번져 흑인과 라티노 빈민가에 산재한 주로 한인 상가의 파괴와 약탈, 방화는 경찰로서도 도저히 한꺼번에 손을 쓸 수가 없는 사태로 확대되어 갔다. TV에서는 동시에 여러 군데서 불타는 건물들과 약탈당하는 상점들의 장면을 현장이나 헬리콥터로 하루종일 중계보도를 하였다.



폭동 직후 LA에서는 거리의 노숙자도 100달러가 넘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벤치에 드러누워 자는가 하면, 아래 위가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비싼 고급 옷을 입고 거리를 배회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폭동 피해의 최종 집계는 총 7억1000만 달러에 달했고 2374개의 업소가 불에 타거나 파괴되고 약탈당했다. 그중 한인들의 피해는 절반인 약 3억5000만 달러나 되었으며, 흑인 빈민가 한인 가게의 90%가 불에 타거나 파괴와 약탈을 당하는 등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돌이켜 보면 폭동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한인들에 대한 가르침은 컸다.

폭동이 한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나는 기독교적 삶의 가치, 즉 이웃 사랑의 부족이 원인이라고 본다. 짧은 이민 역사로 한인들이 이 미국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미국식이 아니라 반은 한국식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또 한국식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 한인들을 좀 더 빨리 미국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인들이 짧은 기간 동안 부지런히 일해서 부를 쌓는 등 성공한 측면도 있지만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반성할 점도 많았다.

인종화합은 결코 큰 것부터 요구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따뜻한 말 한 마디, 미소 짓는 친절, 남을 염두에 둔 예의범절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가난하고 피부색이 검다고 그들을 무시하는 편협된 생각과 그들에 대한 이유 없는 우월의식은 시급히 고쳐야 할 것들이다.

흑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이 땅에 온 사람들이다. 흑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주인이요, 우리는 손님이다. 남의 나라에 이민을 와서 사는 데는 먼저 교만을 꺾고 겸손해져야 하는 이웃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이창수 / 그레이스미션대학교 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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