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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초록에게 들키다

산등성이의 신록이 등성이 너머로 번진다/산빛이 산을 벗어나서/공제선 너머/무한으로/산을 넘치게 하는 것 같다/번지는 산빛으로 하여 산이 흔들/흔들/표나지 않게 움직인다/저 색을 뭐라고 불러줘야 하나(...)혼자 남은 내가 산등성이를 더듬듯이/떠나온 들판을 쓰다듬으며/쓰다듬으며 온다 -손택수 시인의 '산색' 부분

여자대학교 앞,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온다. 옆에 있던 친구가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학생들의 뒷모습에 사진 찍는 흉내를 내며 "색깔을 입힌다면 초록이겠지"라고 한다. 곁에 있던 다른 친구가 "그렇겠지" 라고 수긍한다.

학생들의 옷차림이 예전보다 화려하고 멋을 많이 부리긴 했지만 내 눈에도 '초록의 황홀한 찰라'로 보인다. 반란과 찬란을, 유혹과 경계를, 질문과 해법을 한 몸에 지닌 신록 같다. 각기 다른 곳에서 맥없이 늙어가는 친구 몇이 초록의 계절에 만나 초록에 관한 시 한 편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네 모습은 나의 거울이다. 너의 얼굴에서 내 시간의 흐름을 실감한다. 어딘가에 빼앗기고 온 것 같은 시간의 저편을 황망하게 불러내기도 한다. 살아온 날들의 얼룩들이 빠지지 않는 과일자국처럼 배어 있는 초로의 여자들에겐 초록은 찾아볼 수 없을 지라도, 연두가 초록으로 다시 주황으로 변하는 수십 번의 계절을 흘려보내고도, 바탕색이 변하지 않는 그림처럼 초록의 이미지를 깔고 앉아 수다가 길어지는 것은 초록에게 마음을 들킨 탓이다.



너와 나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살아오면서 우린 제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시선을 달리 해야 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객관성에 기울든 주관성에 기울든 나름대로 제 형편에 맞는 눈높이를 지니게 되었다.

뭔가를 논한다는 건 서로 다른 시선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초록을 편애하는 것은 순전히 나 개인의 취향이다. 네가 연두를 회유하는 것도 네 취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리가 연두에서 혹은 초록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연두의 반란에도 초록의 찬란에도 다가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반란과 찬란이 꽤 먼 거리 같은데 초록이 출렁이는 이 계절에는 같은 말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서로 상반된 시선을 지닌 너와 내가 결국은 하나의 정점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시점으로 회귀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흰 재킷을 입고 길을 나섰다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 길을 누비다 돌아와 보니 하얀 옷이 초록빛깔로 물들었다. 세상의 초록을 모두 끌어들이려는 내 심사는 초록에 대한 지극한 편애 때문이지만 편애의 밑바탕에는 시간에 대한 절망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공평함이 사라진 것 같은 세상, 우쭐대는 이들만 무럭무럭 웃자라는 것 같은 이 시절에 공평함을 목격하는 눈부심, 세상으로 확장되는 초록의 돌파력에 한껏 고무된다. 어떤 빛깔보다도 무심하지만 친화력이 큰, 무한대로의 확장이 가능한 계절이다.

건조해지는 모공 속에 초록을 적재 한다. 망막 안에도 달팽이관 안에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초록의 뒤를 따라다닌다. 초록을 우려내어 언젠가 닥칠 추위를 대비할 땔감으로 삼아야겠다. 가슴에 뭔가를 저장하려는 것은 쓸쓸한 어떤 시간을 내치지 않고 품어보겠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록의 계절도 아주 잠깐, 그래서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한 아득한 시절, 그러면서도 강력한 무엇이 되어 생을 끌고 가는 목줄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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