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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포럼] 마주함: 두려움의 끝.

김종대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 대표

바다 건너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이 너무나 마음을 아프고 무겁게 한다. 2014년 발생한 내전이 한창인 예멘에서 500명 이상의 난민들이 제주도를 통해 입국했는데, 이들을 받아주지 말자는 청원에 서명한 이들이 목표치인 20만 명을 거의 두 배나 넘겨 6월 22일 현재 40만 명을 바라보는 상황이다. 6월 30일에는 광화문에서 이슬람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집회도 열릴 계획이라고 한다.

2017년 12월을 기준으로 한 유엔난민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강제 실향민의 수는 7천1백만 명이다.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해 있는 예멘에서는 현재까지 200만 명 이상의 실향민이 발생했으며, 28만 명 이상이 본국으로부터 피신해 전 세계에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그중 500명 이상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사증 입국 제도가 있는 제주도로 입국을 선택한 것이다.

500명. 68만 제주도 인구의 0.074%밖에 안 되는 숫자이다. 우리가 이들에게조차 따뜻한 피난처가 되어줄 여유마저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청원인은 이들에게 ‘불법 체류’라는 딱지를 붙였으며, 일부는 이들이 ‘가짜 난민’일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의심부터 하기 전에, 이들이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생존에 심각한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그 난리 통에 어떻게 해서든지 합법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3개월간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제주도까지 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불법’이라는 딱지는 타당하지 않다.

또 많은 이들이 치안을 걱정한다. 하지만 이미 법무부에서는 4월 30일자로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제주도 안에서만 머물도록 출도 제한 조처를 내렸고, 또 6월 1일에는 더이상의 예멘인 유입을 막기 위해 무사증 입국 불허국에 예멘을 포함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마저 과한 조치이며, 난민법 제정 국가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여론이 여론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치안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난민 지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많은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마저도 통과할 확률이 통계상 3%밖에 안 된다. 그 말인즉, 이미 충분히 엄격한 심사 기준을 거쳐야만 난민 지위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중동 난민’이라고 하면 테러리스트일 수 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 중동에서 발생하는 난민들은, 바로 그 테러리스트로 인해서 가족을 잃고 삶이 파괴된 이들이다. 테러리즘의 끔찍한 피해자에게 가해자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오는 난민들이 많이 정착하여 ‘남부의 엘리스섬 (Ellis Island of the South)’라고도 불리는 조지아주 클락스톤 시에서 다양한 난민 출신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클락스톤 시에서는 난민 숫자가 늘어날수록 범죄율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과는 물론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미국에 정착하는 난민에 대한 통계를 보면 75%가 7년 안에 완전히 자립해 정부 보조를 의지하는 입장에서 반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국민이 꺼려하여 일손이 부족한 직업군에서도 성실히 일하여 지역 경제에도 이바지한다. 길게 보았을 때 난민은 한 국가의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만난 난민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와 책임감이 강하다. 일이 주어지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집에 어느 때나 들려도 늘 따뜻하게 환영해준다. 한 무슬림 가정은 우리가 기독교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성탄절에 우리를 위해 특별히 선물을 준비해주기도 하였다. 우리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은 밤에 나가 일하는 부모를 위해 밥을 짓고, 동생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본인은 열심히 꿈을 위해 공부한다. 사실 나와 다른 이를 맞이한다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필자 또한 그랬다. 처음 클락스톤 시에서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안에 ‘난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도, 히잡과 아랍어가 주는 낯섦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맞대어 만나고 보니 어느 순간 선입견은 사라지고, 진심으로 서로를 돌보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돼있었다.

단일민족의 정체성이 강하고 주로 같은 얼굴만을 마주하는 한국 사회는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난민이 매우 낯설고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먼저 열고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면, 필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을 ‘난민’이라는 부류로 보는 시선이 하나의 개인과 영혼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서로가 같은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주 조금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어쨌든 난민 이슈가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된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이 일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하고, 나와 다른 이들을 더욱 존중하고 환영하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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