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뜨락에서] 그림을 끝내다

그림 전시회에 가면 보기 좋은 그림들이 알맞게 걸려있다. 어느 그림이든 마침표를 찍듯이 화폭 어디에 화가의 서명이 있다. 동양화의 경우에는 화가의 낙관이 적당한 공간에 공들여 찍혀있다. 서양화는 화가의 이름을 나타내는 표시가 각자의 취향대로 글씨로 그려져 있다. 동양화나 서양화나 그림을 그린 작가의 자부심이 실려있는 끝내기로 읽혀진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디에서 어느 만큼에서 붓을 멈출 것인가 심사숙고 하게 되고 서명을 주저하게 되는 때도 있다고 한다. 때때로 이름이 써 있지 않아 작품의 주인이 누구인가 세간에 논란이 되기도 한다. 작가가 끝 맺음을 못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옆에는 미완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작품들이 있다. 음악적 형식을 다 채우지 못한 노래, 논리 전개의 결말을 빠뜨린 연구의 글, 채색을 다 끝낸 것 같지 않은 서명 없는 미술 작품, 예고 된 목차를 다 마치지 못한 소설 그리고 타고난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의 삶, 세상의 기대를 온전히 부응하지 못한 어느 공동체의 너무 빠른 무너짐에 이르기까지 미완성이어서 안타까움을 주는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미리 설정한 그 무엇을 다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 따름이지 "너는 거기까지"라는 어떤 음성 앞에서는 이루어 놓은 그 지점이 그것의 완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림을 시작할 때 우리는 마음 속으로 혹은 머리 속에 어떤 영상을 마련하고 그것을 따라가며 손으로 화폭 위에 실현 시킨다. 솜씨가 따라가 주어 떠오른 영상이 오롯이 재현되면 회심의 미소를 짓고 화폭과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붓을 놓는다. 그리고 그림의 마무리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 이것이 내가 이루어 놓은 것이다. 자랑스럽게 세상에 공표한다. 이 이름 넣기 작업이 서양화보다는 동양화 쪽이 한결 멋이 있다. 그냥 쓰던 붓으로 이름 글자 써 넣기 보다 이때를 위해 준비해 둔 이름과 별칭을 새긴 도장을 꺼내 붉은 인주 담아 그림 끝에 보기 좋게 찍어 놓는다. 한층 더 그 그림의 품격을 더해 준다.

세상에는 그린 이의 서명이 없는 그림이 많다. 왜 그 작가는 자기 이름 밝히기를 포기했을까. 분명 그림은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끝맺음의 하나인 자신의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것은 어떤 마음에서일까 이리저리 생각해 본다. 이 정도의 작품에 굳이 이름을 걸어 놓음이 부끄러웠을까.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불편했을까. 이름 없이도 완성된 그 그림의 가치 만으로도 만족했을까.



우리나라 민화라 불리는 서민의 그림에는 거의 작가의 서명이 없다. 소위 이름없는 백성들을 위한 그림이었고 그린 사람도 이름 없는 화가이어서 이름을 앞 세우지 않은 그림의 세계로 만족하는 보통 사람들의 겸손한 마음 상태를 보는 듯 하다. 조그마한 것 하나 이루고도 이름부터 내세우는 자기 선전의 시대에 오히려 특별한 화풍을 이루고도 겸손했던 마음들이 더욱 친밀하게 다가 온다. 그렇게 그림을 끝내었던 사람들의 삶과 작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안성남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