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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언 가슴 녹이는 문풍지처럼

작은 일에 토라진다. 죽자사자 하던 친구도 틈새가 벌어지면 '웬수' 되기는 시간 문제다. 손톱보다 작은 일에 기분 잡치고, 목숨 걸고 싸울 일도 아닌데 사이가 벌어져 틈이 생기면 모든 게 꼴사나워진다.

한인회나 교회, 단체 일을 하다보면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작은 일로 설왕설래 하며 시간 낭비하거나 마음 상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잘 알지 못하면 반대 쪽에 서게된다. 자기가 잘 모르는 일, 관여하지 않은 일은 나쁘게 생각하거나 협조하지 않을 궁리를 한다.

동네에서 지도자이시고 모범되시는 어르신의 생신 잔치를 준비했다. 본당에서 할 건지 친교실에서 해야 하는지, 병풍 두르고 잔치상을 차릴 건지 말 건지, 교회에서 큰절을 올려도 되는지 안 되는지 사람마다 생각이 분분하다. 집안이든 단체든 교회든 정말로 큰 문제가 생기면 서로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티격태격 싸울 시간이 없다. 근데 시시껄렁하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작은 일에 생각이 엇갈리게 되고, 내 식으로 안 되면 인격이 묵살당하는 기분이라서 서운하고 마음 상한다. 정성과 존경을 담아 한 마음으로 즐겁게 축하하면 될 일을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 주제 파악이 헷갈리고 '콩 놔라 감 놔라'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

생각의 틈새 마음의 틈새가 생기면 얼른 봉합하는게 최선이다. 시간을 끌수록 틈새의 골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보태고 찧고 까불며 문제를 부풀리고 틈새를 파고드는 무리나 작당들의 행태가 문제를 심화시킨다. 마음 속에 바늘 구멍 만큼 작은 틈새가 생기면 그 구멍으로 폭풍이 몰아치기는 시간 문제다. 스스로 생각의 틀을 넓히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수용하고 인식의 폭을 넓히는 관대함이 틈새를 이겨내는 비결이다.



어릴 적 햇볕 드는 가을날이면 어머니는 월동 준비를 하셨다. 뽀얀 죽 쑤어 말린 국화 꽃잎 넣어 창호지 바르고 겨우내 찬바람을 막아 줄 문풍지를 오려 붙이셨다. 창살이 아름다운 미닫이 문은 세월의 흔적으로 문과 문짝이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겨울 삭풍이 불면 그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방안에서도 귀가 시렸다. 그래도 어머니가 정성스레 부친 문풍지는 모진 겨울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됐다. 문풍지는 겨울이면 틈새를 막아 차가운 바람을 막고 동시에 통풍의 기능을 감당한다. 문풍지는 통풍하면서 방풍하고 방풍하면서 통풍한다.

그래도 문풍지는 밤이면 혼자 운다. 혹독한 겨울 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우수수 갈잎 떨어지는 소리로 흐느낀다. 사는 것은 일방 통행이 아니라 상호 소통이라고, 안에서 밖을 보고 밖에서 안을 보는, 어둔 귀와 닫힌 가슴 열고 타인의 말과 아픔에 동참 하라고, 생각과 행동이 다를지라도 언 가슴을 녹이는 것은 작은 배려, 착한 손길이라고.

모진 겨울 바람 견디며 어둠 속에 홀로 우는 밤, 곤하게 잠든 어린 남매를 바라보는 문풍지의 가슴은 따스함으로 작게 떨린다.


이기희 /윈드화랑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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